보는 법
보는 법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4.03.2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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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보는 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지도부터 말해보자. 미국이나 유럽을 나가서 세계지도를 보면 우리나라가 참으로 동쪽의 끝 곧 극동(極東: Far East)이라는 것을 느낀다. 태평양이 중심인 지도에서 우리나라가 가운데 있는 것만 보다가 대서양이 중심이 된 지도에서 동쪽 끝으로 밀려난 우리를 볼 때의 기분은 참 더럽다. 더럽기만 한가. 구미인에게 우리가 변방으로 고착화되어 인식되는 것이 더 걱정스럽다. ‘우리나라를 모른다’고 할 때, ‘모른다’는 말 안에는 지도의 오른쪽 구석이라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변명이 들어있다. 더 나아가면, 굳이 알 필요가 있냐는 판단도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재밌게도 서구인이 보는 동양에는 여러 층차가 있다. 유럽인들은 동양하면 기껏 해봤자 터키였다. 오리엔탈 특급열차(oriental expess)가 바로 이스탄불까지 가는 열차다. 역마다 빨간 양탄자를 깔아주는 그 고급열차 말이다.

옥스퍼드대학 안의 동양학연구소(oriental studies)에는 불교 책이 많다. 인도 정도가 그들에게는 동양으로 들어오고, 티벳의 불교 정도가 거기에 낀다. 아니면 앗시리아 정도의 중동이다. 가끔씩 한국철학을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너무 먼 동양이다.

중동(中東)이라는 표현도 그렇다. 가운데 동쪽(Middle East)라는 말인데, 우리는 중동하면 오히려 서양 쪽 어느 나라로 생각하기 쉽다. 방향도 분명 서쪽이지 동쪽이 아니다. 그런데도 서구인은 열사의 사막을 동양으로 여긴다.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도 그들에게는 동양이다. 월드컵 때마다 어린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조별예선에서 왜 우리나라 축구팀이 중동의 팀들이랑 뛰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시각조차 구미적 사고다.

미국인들에게는 동양하면 그런대로 아시아를 많이 떠올린다. 일단 그들도 중동이 동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월남전과 한국전을 겪으면서 동양과 아시아를 중첩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학생들에게 스티커를 나누어주고 “세계지도에서 동양하면 떠오르는 곳에 붙여보라”고 했는데, 상당히 많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아시아계 이민이 많아지면서 바뀐 의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라크 전에 참전한 학생은 중동에 붙이고 있었다. 나야 동양이라고 하면서 기껏해야 불교를 말할 뿐이지, 대부분은 동아시아 사상에서 머무르지만 말이다. 동서양의 비교에 나조차 중동문화를 집어넣지 않는다. 몰라서도 그렇지만 말이다.

요즘 학생들이 번역과제를 달라고 할 때, 나도 공부할 겸 미국서 전문가에게 얻어온 이슬람철학 개론서를 내주고 있다. 내용에서 놀라운 것은, 만약 이슬람을 ‘마호메트교’라고 부르면 그것은 기독교를 ‘바울교’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마호메트는 절대자의 계시를 받은 사람으로 이슬람을 정리한 사람으로, 바울이 신약성서를 정리한 것과 같다는 이야기다. 신약성서의 대부분이 바울의 서신이라고 해서 기독교를 바울교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이슬람은 마호메트교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나쁜 말이다. 서양인의 동양폄하의식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 말을 책으로 써내 유명해진 저자도 이집트 출신이고 그가 말하는 동양도 결국 중동을 말한다. 유럽인의 중동폄하의식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요즘은 우리나라 학계에서도 이 말을 원용해서 자주 쓴다.

보는 법은 많다. 자기만 보는 것이 아니다. 남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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