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서 다시 부르는 정암촌 청주아리랑
청주서 다시 부르는 정암촌 청주아리랑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4.03.25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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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람예술단, 오는 29일 청주예술의 전당서 공연

정암촌 이주 1세대 신철 선생 자녀 송운·송죽 남매 초청

김익교 단장 "원형에 가까운 아리랑 들을 수 있는 자리"


“~시아버지 골난데는 술 받아주고 시어머니 골난데는 이 잡아주자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시아버지 죽으면 좋댔더니 빨래줄이 끊어지니 또 생각난다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중략)

아리라랑타령을 그 누가 냈나 이웃집 김도령 내가 냈지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 스리라랑 아라리요

아리라랑타령이 얼마나 좋은지 밥 푸다 말구서 엉덩이 춤춘다.”

  - 청주아리랑 중에서

중국 정암촌 이주민들이 긴 세월동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불렀던 ‘청주아리랑’이 정암촌 사람들의 목소리로 청주에서 다시 불린다.

예술로 나눔을 실천하는 나도람예술단(단장 김익교·사진)은 정암촌 주민 신송운·송죽 남매를 초청해 오는 29일 오후 2시 청주예술의 전당 소공연장에서 ‘나도람 & 정암촌 함께 부르는 청주 아리랑’을 공연한다.

‘청주 아리랑’은 1938년 일본의 만주지역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청주와 옥천, 괴산, 충주 등 충북지역에 살던 80여 가구가 고향을 떠나 중국 길림성 정암촌에 정착하면서 삶의 애환과 고향을 그리며 부른 노래다.

이주민들은 이주 첫해 움막에서 살다가 이듬해에야 바람이나 겨우 막을 수 있는 엉성한 초가집을 짓고 살게 됐을 정도였고, 땅이 척박해 입에 풀칠만 하고 살았다. 지난한 생활 속에서 이주민들은 고향의 노래인 청주아리랑을 부르며 삶터를 가꾸었다. 구성진 가락 속에는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정암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청주에서조차 까마득히 잊혔던 ‘청주 아리랑’은 1978년부터 서서히 알려졌고, 1990년 이후 충북에서 정암촌에 관심을 갖고 연구 조사하면서 청주아리랑이 퍼지기 시작했다. 현재 정암촌 이주 1세대인 신철 선생(1933~1996)이 부른 청주아리랑 음원이 남아있고, 충북의 민요인들에 의해 불리며 정암촌은 청주아리랑으로 대변되고 있다.

‘나도람 & 정암촌 함께 부르는 청주 아리랑’청주 공연에는 신철 선생의 자녀인 신송운·송죽 남매가 출연해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청주아리랑을 들려줄 예정이다. 신송운·송죽 남매가 직접 들려줄 청주아리랑은 중국 정암촌 강제 이주 후 77년여 만에 청주에서 처음으로 정암촌 주민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뜻깊은 자리다.

이외에도 나도람예술단의 공연과 하늘샘 색소폰, 그린향 크로마하프, 기타동아리 딩까딩까, 오카리나 동아리 아리아 팀이 출연해 흥겨운 무대를 선사한다.

공연을 기획한 김익교 나도람 예술단장은 “청주아리랑을 부르는 정암촌 사람인 신송운 송죽 남매가 서울에 입국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청주에서 청주아리랑이 불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공연을 마련했다”며 “여러 사람이 청주아리랑을 부르고 있지만 신송운·송죽 남매의 공연은 원형에 가까운 청주아리랑을 들을 수 있다는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또 “청주에 문화가 없다고들 말하지만 청주아리랑처럼 있는 것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며 “충북사람들의 한이 서린 청주아리랑이 이번 남매의 공연을 통해 육성되고 보존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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