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먼저 와서
꽃 먼저 와서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4.03.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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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류인서

횡단보도 신호들이 파란불로 바뀔 동안
도둑고양이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도로를 질러갈 동안
나 잠시 한눈팔 동안,
꽃 먼저 피고 말았다.

쥐똥나무 울타리에는 개나리꽃이
탱자나무에는 살구꽃이
민들레 톱니진 잎겨드랑이에는 오랑캐꽃이
하얗게 붉게 샛노랗게, 뒤죽박죽 앞뒤 없이 꽃피고 말았다.

이 환한 봄날
세상천지 난만하게
꽃들이 먼저 와서, 피고 말았다.

※ 비 온 끝에 묵은 벚나무 가지마다 꽃망울이 툭, 툭, 돋아납니다. 망울망울 햇살 한 줌 품은 꽃들의 환한 눈빛에 발길을 멈춥니다. 먼저 핀 꽃에 마음이 가 닿는 사이 여름이 그 곁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시간의 긴 실타래도 씨앗 속에 깃들어 있는 우주임을 봄이 증명합니다. 무심한 시선에 문득 꽃들이 먼저 와 노랗게, 하얗게, 붉게, 계절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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