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 전의 사랑에 홀리다
1400년 전의 사랑에 홀리다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4.03.18 2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약속시간에 맞추어 운전을 하다가 라디오 대담에 귀가 솔깃해졌다. 어머, 어머 정말 신비한 일이네. 어쩜 그럴 수가.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우고 혼자 가슴이 먹먹해져 하루 종일 마음이 설레었다.  

7세기 중엽 페르시아가 망하자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자(아브틴) 일행은 중국에 망명한다. 중국의 정치적 혼란기에 피난 온 페르시아인들의 안전이 위협당하자, ‘독립적인 낙원’으로 알려진 신라’로 귀화하게 된다. 페르시아인들 중 마지막 왕자(아비틴)는 신라를 도와 중국을 물리치고, 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신라 공주(파라랑)와 결혼한다. 신라 뱃사람의 안내로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옛 페르시아로 가는 도중 아들(페레이둔)을 낳는다. 왕자 ‘아비틴’이 꾸었던 꿈의 계시대로 아들(페레이둔)이 조상의 원수를 갚고, 공주(파라랑)는 신라에 승전보를 전한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는 이란의 학자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내용은 “고대 페르시아 영역인 지금의 이란에 수백 년 간 구전되다 11세기에 필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쿠시나메>란 서사시가 있고, 신라와 관련된 내용이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쿠시나메>에 신라가 숱하게 언급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이 교수는 이란으로 건너가 모든 자료가 사실임을 확인한 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쿠시나메>엔 멸망한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족이 신라로 망명한 뒤 신라 공주와 혼인, 왕자를 생산했고 그 왕자가 귀국해서 적을 물리쳤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교수를 비롯한 한국·이란 관련학자들이 번역작업에 매달렸다. 이번에 이희수교수는 <쿠시나메>- 1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천년사랑(청아)’을 출간했다. 구전 서사시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쿠시나메는 고대 신라의 숨겨진 모습을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전체 800여쪽 중 500여 쪽에서 신라(Basilla)를 언급했는데, 신라는 ‘선녀로 가득 찬 낙원’으로 묘사되며 신라왕(타이후르)의 환대와 협력, 중국과의 전쟁 등도 그려진다.

신라 헌강왕 때 울산에 도착한 이방인 ‘처용’의 이국적인 외모나 신라의 골품제도 중 하나인 족외혼금지로 왕자가 힘들게 사랑을 이룬 점, 또 인류사에 최초로 철기를 출현시킨 페르시아인의 협력이 삼국통일과 맞물려 역사적 사실성을 더한다.

아직도 규명이 확실치 않은 페르시아계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경주 황남대총’의 황금 유물과 로마 유물들. 고분(古墳) 네 모서리에 서역인이 분명한 무인상의 생김새와 손에 들린 폴로용 나무스틱 역시 사실적 신비감을 부추긴다.

1400년 전에 아시아대륙 반대편의 신라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동맹이라니! 허구의 이야기 같지만 서사시는 당당히 문자로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서사시는 근대 이전의 소설이다. 하지만 우리의 ‘삼국유사’처럼 문학적 문장 속에 역사적 진실을 숨겨놓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페르시아제국(이란)의 염원이 담긴 이 서사시는 끊임없이 내려오며 그들의 희망이 되었고 까마득히 먼 나라, 갈 수 없는 신라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1400년 전에 이미 혈맹으로 맺어진 DNA가 있어 이란에서 방영된 <대장금>의 시청률이 80~90%에 달했던 것이라면 억지일까. 그들 히잡을 쓰는 풍습이 쓰게치마로 얼굴을 가리는 우리의 옛 풍속에 친근감을 느꼈다면, 끈끈한 가족중심의 생활상이나 이웃을 사촌으로 대하는 정서도 닮았다면 역시 억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황된 이야기라고 하기엔 연관된 이야기와 유적이 많아 부질없을 상상력을 더욱 부풀린다.

이 교수의 말처럼 “현재의 보편적 역사의 인식으로 받아들이면 참 황당한 이야기가 될 지라도 많은 콘텐츠를 개발할 여지는 무궁무진하다.” 석유 매장량 세계 3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인 이란이다.

1400년 전에 이미 한류의 선두주자인 ‘왕자와 공주의 사랑’에 기대어, 작지만 힘 있는 21세기의 실크로드가 새롭게 연결되기를 희망하니, 그 사랑의 신비에 설렐 수밖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