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탈고법
나의 탈고법
  • 김우영 <작가·한국문인협회>
  • 승인 2014.03.1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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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우영 <작가·한국문인협회>

지난 늦겨울, 하얀 잔설이 하늘의 구름 자락을 찢어서 산과 들녘에 듬성듬성 던져놓은 것처럼 하얗게 되었을 때, 이 맵고 추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한 편 써야겠다며 차디찬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원고지를 잡았다.

허기진 생각에 주린 배를 움켜쥐고 지냈던 이 겨울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 중년의 작가라는 위인의 오기가 책상 앞으로 끌어당겼는지 모른다. 그간 준비했던 자료들을 정리하여 원고지 한 칸, 한 칸을 메워 나가기 시작했다. 몸이 춥고, 마음이 춥고, 원고지가 한기에 으스스 떨었던 기나긴 세월.

하나의 소설이 오늘에야 기어이 완성이 되었다. 고난과 아픔의 나날이 끝났다는 시원함과 탈고의 잔치가 눈에 어린다. 탈고 때마다 술집을 찾는다. 뭔가 허전한 가슴으로 술집을 기웃거린다. 그것도 혼자 아닌 대작을 할 적당한 위인을 찾아서 간다.

작품이 끝날 때마다, 어떤 작가는 뱃속의 오물을 전부 배설한 기분이라면서 아주 시원하다는 사람도 있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살점을 자꾸만 한 껍질씩 벗겨 내 나신이 되는 것 같다면서 초조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또 어떤 작가는 몸 안에 있는 에너지가 다 나가버려 힘없이 나른한 몸으로 색시가 있는 젓가락 장단 술집을 찾아 색시와 실컷 뒹굴며 술을 먹어야 다시 에너지가 충전돼 다음 작품을 준비한다고 한다. 또 어떤 작가는 훌쩍 어디론가 혼자 여행을 다녀와야 머리가 식혀진다고 한다.

각기 자기의 특출난 성격과 표현의 도출로 탈고 후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새로운 마음을 준비한다.

나 같은 경우 뭔가 허전한 가슴과 부끄러움이 앞서 술집 근처를 서성인다. 본시 술이라는 것이 누군가 더불어 마셔야 한다. 탈고 후에는 알 만한 어느 사람의 허리띠를 잡고 술집으로 이끈다든가, 격조했던 지인(知人)을 전화로 다짜고짜 불러내어 술을 마셔야만 탈고 후에 위안이 된다.

이런 경우, 나한테 걸려든 사람은 한마디로 재수 없이 걸려든 것이다. 몇 달 동안 한 작품을 다듬느라 산 넘고 들을 건너면서 숱한 사람들과 작중에서 희로애락을 나누며 먼 고행의 길을 걸어왔던 터라 온몸이 허전하다. 그리하여 이 날은 누군가를 움켜쥐고 앉아 몸 곳곳에 주님(酒任)을 분사하듯 술을 뿌려야만 한다. 

내 주법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초반에 그 날치 주량인 과반을 마셔버리는 <초전박살형>이다. 그러니 내 앞에서 체면상, 반 억지로 앉아서 울상을 지으며 대작을 하는 상대방은 초반 술잔 세례에 정신을 못 차린다.  

이것이 탈고 후에 허전한 가슴을 메우는 위안법이요, 다음을 위한 에너지의 재충전이다. 이러지 않고서는 한 작품, 한 작품을 오랫동안 조형하면서 겪은 고통의 낱알들을 버릴 수 없다. 아니, 이러한 나의 영혼 조각들이 다시 뼈가 되고 살이 되어 재충전 되는 마음으로 돌아와 다음을 준비하면서 언어를 조탁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나의 탈고법을 그런대로 잘 적용하여 나의 문학 세계를 펼쳐간다. 다만, 안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주기적으로 탈고 술 잔치에 걸려드는 위인이다. 혼자서 마시는 술은 소인(小人)인지라, 나는 늘 대작 꾼을 찾는다. 기다려진다. 다음 탈고 술 잔치 때 걸려들 위인은 누구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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