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와 잡초론
약초와 잡초론
  • 안병권 기자
  • 승인 2014.03.16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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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풀뿌리 민주주의 계절이 돌아왔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상의하달의 정치제도가 아닌, 하의상달의 참여 민주주의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풀뿌리’는 국민을 비유하는 민초(民草)와 같은 개념이다. 민초는 권리를 누리기 보다는 맡은 바 의무에 더 충실하다. 잡초는 풀뿌리 중에서 강하기로 으뜸이다.

하지만 정직한 일반 국민들은 잡초라는 이름에 연상되어 불려지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2003년 노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른바 ‘잡초론’을 제기했다. 국민을 농부로, 정치권을 밭으로, 정치인을 곡식으로 비유하며 농부는 김을 맬때 밭에서 잡초를 뽑아낸다고 주장했다.

이 편지에 대해 일부 정치권과 언론은 누가 곡식(약초), 잡초라는 얘기냐며 발끈하고 나섰음은 물론이다.

이런 현상에 ‘도둑이 제발 저린 격’ 등 냉소적 반응과 함께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잡초임을 인정한 격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잡초는 ‘생활에 도움이 안되는 풀’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아니더라도 생육이 빠르고 번식력이 강해 수명도 작물에 비해 유독 길다. 혹자는 잡초의 순기능을 제기한다. 작물이 생존경쟁의 긴장감을 통해 좀 더 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작물로 대변되는 약초의 공간을 차지하고 영양분을 축내고 성장을 방해할 뿐이다. 약초는 토양, 기후 등 조건이 맞는 곳에서 자라야만 제대로 약효를 기대할 수 있다.

약효 있는 작물로 재배하려면 주변에 잡초가 뿌리 내리지 못하게 해야한다. 잡초가 약초의 종자에 섞일 때는 약초의 품질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이를 방지하는 데 필요한 제초비, 노동력이 필수적으로 동반돼 비용을 필요 이상으로 높게 지불하게 마련이다.

요즘 어느 곳에서나 지방선거 후보자를 만날 수 있다. 유권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표밭을 누비는 후보자의 발길이 잦은 까닭이다. 제대로 된 지역 일꾼을 선택하는 안목을 키우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가 잡초를 약초로 알고 선택한다면 그것은 잡초의 구두선(口頭禪)에 넘어간 것이지 제대로 알고 선택한 것이 아니다.

잡초가 잡초에 그치지 않고 독초로 자라는 것을 유권자가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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