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5)-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5)-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 박숙희 <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
  • 승인 2014.03.1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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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박숙희 <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

따사로운 봄 햇살은 많은 생명들의 원천이다. 미세먼지가 밖으로의 외출을 움츠리게 하고 이런저런 삶의 질곡들이 겨우내 움츠렸던 기지개를 켜기 어렵게도 하지만 그래도 매해 봄은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개나리 등 꽃들과 함께 하는 행복을 너나없이 어김없이 꿈꾸기 때문이다.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 다섯 번째 이야기는 ‘직지’ 하권 16장에 나오는 파릉(巴陵) 스님의 말씀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엄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 번역 및 강해(199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파릉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조사의 뜻과 불교의 뜻이 같은가 다른가?”라고 물으니 파릉 스님은 “닭은 추우면 나무에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속에 들어가니 근원은 같으나 파(派)가 다르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마치 승려들이‘입에 오르면 교라고 말하고 마음에 전하면 선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다시 말해 근원에 통달한 자에게는 선도 없고 교도 없을 것이나. 그 파(派)를 고집하는 자들에게는 각각 선과 교가 있음에 다름이 아니다.

닭은 차가우면 발을 따뜻하게 하려고 나무에 올라가서 두 발을 자기 날개로 감싼다. 이렇게 하면 닭은 따뜻함을 느껴 잠도 더 잘 온다. 그 반면 오리는 추우면 물속으로 내려간다. 오히려 오리는 물속에서 쾌적함을 느끼거나 따뜻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생물구조는 각기 다 다른 측면이 있다. 미꾸라지와 같은 물고기는 물속에서 잘 살지만 사람과 같은 육지 동물들은 물속에 있으면 곧바로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자기에게 알맞은 보금자리나 생명의 유지 조건이 각기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여기서 물속에 들어가고 나무에 올라가는 것이 각기 다른 것 같다. 그러나 크게 보면 실상은 모두가 다 같은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각기 다 자기에게 편안하고 안락한 행복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음자리를 깨달은 자리는 선과 교를 전할 뿐이며, 원래 근원을 통달한 사람에게는 선도 없고 교도 없는 것이다. 선과 교의 분리 역시 득도를 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그런데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령 선을 익히는 이는 선이 최고라고 하고, 교를 익히는 사람은 교가 제일 좋다고들 말한다. 이런 위치에 서면 궤변이나 아전인수를 일삼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요즘은 많은 부분에서 삶이 각박하다. 나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 중에서도 내용을 보면 각기 또 딴판이다. 자기주장 혹은 옳음에 대한 기준조차도 이익이나 편 나누기에 직면하면 자주 쉽게 변한다. 이로 인해서 때로 고독하고 우울하다. 이것은 파릉 스님의 지적처럼 큰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정원, 그것이 올해에는 더욱 커져서 다양함을 인정하고 동시에 우리 모두 하나가 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행복을 위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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