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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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 승인 2014.03.1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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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아름다운 그림은 기교(技巧,Technic)가 아닌 마음(Heart)으로 그려진 것이다.

걷는 날이 많다. 어지간한 거리는 걷는다.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해서다. 일정시간 걸으면 장기(臟器)운동이 활발해지고 소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지인의 권고가 고맙다. 사람 반(半), 차(車) 반(半), 사람에 체이고 차에 밀리듯 우왕좌왕 서성대는 복잡하고 번잡한 도시를 벗어난다. 여느 때와 달리 평소에는 다니지 않았던 한적한 도시외곽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둘러보는 재미가 있어서다. 지나치는 길목에 세워진지 오래된 듯한 건물도 보고 뜨문뜨문 오고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읽는다. 무언가? 그냥 지나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놓치지는 않을까? 하는 호기심 아니면 또 다른 기대감 때문이다.

기원전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공자(孔子.B.C.551-B.C.479)는 틈만 나면 제자들과 함께 세상 나들이를 즐겼다. 여러 곳으로 여행을 하면서 거리에서나 또는 머무는 곳에서 만난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말에 귀기우려 경청하였고 그들이 말하는 말이나 행동을 통해 구슬 같은 지혜를 얻었다.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것을 닮아 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훗날 공자는 사람들에게 삶의 귀감이 되는 그의 말(孔子 曰)을 남긴 당대의 사상가로서 인류에게 커다란 공헌을 한 성인 중, 한명이다.

정상적인 아이로 태어난 후 유아기에 시각과 청각을 잃은 헬렌 켈러(Hellen Keller)는 시각을 잃은 것보다 청각을 잃은 것을 더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녀는 늘 곁에 있는 가정교사 설리번(Sullivan)의 입술과 손을 만져가며 무슨 말을 하는가를 알게 되었고 이의 결과 주변에서 들리는 모든 사물의 아름다운 소리와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고 한다.

일상의 생활에서 말하기가 쉬운 것 같지만 막상 말할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무슨 말을 해야 되나? 망설이게 되고 생각처럼 수월치 않다. 말하기 못지않게 글쓰기 또한 녹녹치 않다. 이 보다 더 어려운 일은 보는 것(To See)이다. 건축(Architecture)을 공부한 나는 한동안 보는 훈련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건축이 아름다운 것은 건물의 형태가 삶의 모양보다 생활철학에 있다고 보는 사람들의 의도가 표출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람들에 의해 축조되고 사람들과 함께한 건축은 위대한 인류문명의 생태적, 물리적 쾌거다.

밝은 빛에 드러난 그럴듯한 건축(Architecture)을 만나면 건물이 단순히 표현된 물리적 형태이기보다는 정신적 지적산물(知的産物)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세워질 당시의 모양처럼 변함없이 원형(原形)그대로의 모습으로 그곳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들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적 언어를 지닌 역사적 실체임을 깨닫게 된다. 

하늘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모니터(monitor)다. 높고 푸른 하늘에는 같이(together), 함께(with) 그리고 너와 나(You and I)등, 무한한 공간언어(空間言語)가 담겨있다. 하늘에 가깝게 다가가면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볼 수 있다. 하늘과 함께라면 멀리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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