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피리소리
봄밤의 피리소리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3.1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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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누구나 봄을 기다리는 것은 따뜻한 날씨와 아름다운 풍광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봄도 함께 할 님이 없거나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에게는, 도리어 고통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화창하게 맑은 봄날,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님 생각이 절로 나게 되어 있다. 봄의 낮이 꽃이라면, 밤은 향기거나 노랫소리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님 생각을 간절하게 하는 노랫소리를 들으면, 봄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타향에서 봄밤의 피리 소리를 듣고 고향을 떠올리는 나그네의 심사(心思)를 운치 있게 그려내고 있다.

 

◈ 봄날 밤에 낙양에서 피리소리를 들으며(春夜洛城聞笛)

誰家玉笛暗飛聲(수가옥적암비성) : 어느 집에선가 은은히 날아드는 옥피리 소리

散入東風滿洛城(산입동풍만낙성) : 봄바람 불어들어 낙양성에 가득찬다

此夜曲中聞折柳(차야곡중문절류) : 이 밤 노래 속에 절양류곡 소리 들려오니

何人不起故園情(하인불기고원정) : 누구인들 고향 그리는 마음 생기지 않으리오

 

※ 타향인 낙양(洛陽)에서 봄밤을 맞고 있는 시인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고향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던 터였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시인의 그리움 증을 도지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누구의 집으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피리 소리가 남 몰래 날아들어 온 것이다. 피리도 여느 뿔피리가 아니었다. 귀하디 위한 옥(玉) 피리였다. 아마도 귀한 사람을 위해 부는 피리이기 때문에 피리도 귀해야 하는 것이리라. 소리만 듣고 그 피리가 옥피리인지 뿔피리인지 알 수 없겠지만, 시인은 임을 그리는 간절한 노래 내용으로 말미암아 옥피리임을 알아 챈 것이다. 임을 그리워하는 정이 듬뿍 담긴 피리 소리는 때 마침 불어온 봄바람을 타고 낙양(洛陽)성에 가득 퍼져 나갔고, 그 소리는 그 때 낙양(洛陽)의 어느 한 집에 기거하고 있던 시인의 귀에도 들렸던 것이다.

여기에서 동풍(東風) 말고 봄을 암시하는 말이 바로 옥적(玉笛) 소리이다. 물론 이 소리는 봄이 아니더라도 아무 철이나 들릴 수 있지만, 유독 봄철이라야만 이 소리가 듣는 이의 심금(心琴)을 울리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로 봄이 그리움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리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버드나무인데, 이 버드나무는 초봄에 싹을 틔워 봄이면 그 푸른 가지를 하늘하늘 늘어뜨린다. 옛사람들은 이별할 때 이별의 징표로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주곤 하였다.

이 시의 옥적(玉笛)은 수사(修辭)를 위한 것일 뿐이고, 기실은 버들피리로 보인다. 버들피리로 버드나무로 상징되는 그리움과 이별의 정을 노래한다는 발상은 참으로 기발하기 짝이 없는데, 실제로 시인에게 들린 노래도 절양류곡(折楊柳曲)이었던 것이다. 버들가지 늘어진 계절에 버드나무로 만든 피리로, 버드나무 가지 꺾어서 이별의 정표로 준 사연을 담은 노래를 연주하는 소리를 들었으니 시인의 뇌리는 온통 버드나무 생각으로 가득 찼을 터이고, 더 이상 시인은 그리움의 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되고 만 것이리라.

버드나무는 그 연하고 푸른 빛깔로 봄을 대표하면서도, 동시에 이별과 그리움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 봄의 나무이다. 여기에 피리 소리를 내는 악기 노릇까지 할 수 있으니,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봄을 느끼게 해 주는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버들피리야말로 진정한 옥피리(玉笛)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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