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하고 (김민정 글/ 한겨레출판)
각설하고 (김민정 글/ 한겨레출판)
  •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 승인 2014.03.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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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한국인에게 한국어가 낯설어지는 순간. 참 부끄럽다. ‘각설하다’(동사·말이나 글 따위에서 이제까지 다루던 내용을 그만두고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리다)는 비록 한자어이지만 분명 우리말이건만 왜 이리 생소할까. 내 기억에 의하면 단 한 번도 내 입에서 뱉어진 적이 없는 말이다. 하물며 두 귀로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남들처럼 책가방 메고 12년 학교에 다니고 더 배우겠다고 하이힐 신고 4년을 또 다녔고, 그것도 아쉬워 대학원도 다녔으면서 이것 참 부끄럽다. 책을 너무 안 읽었나 보다. 아니 내 기억력이 너무 짧은 걸로 스스로 토닥여야겠다. 불현듯 궁금해진다. 내가 알고 쓰는 한국어가 과연 몇 개나 될까. 책을 좀 더 읽어야겠다.

산문이 좋다. 복잡한 소설보다 어려운 시보다 딱딱하지 않고 읽으면 읽을수록 공감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산문이 좋다. 그래서 도서 ‘각설하고 ’(김민정 글·한겨레출판)의 1부, 2부까지는 아주 좋았다. 격하게 공감하고 웃고 고개 끄덕이다가 나 역시 그랬던 것 같아 부끄러움에 잠시 책을 덮고는 아파트 경비아저씨를 찾아가 음료수 하나 내밀며 수줍게 인사도 했다. 3부부터는 시가 등장한다. 아가에게 불러주는 동요는 단어가 고와 매일 불러주고 싶지만 시는 왠지 어렵다. 수능 준비하며 지나치게 분석적으로 접한 탓일까 내 님 생각나는 정지용의 ‘호수’와 노래가 더 유명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제외하고는 지금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시 한 편 없다. 읽고 또 읽고 책장을 덮고 생각하다 쉬었다 내일 다시 읽으면 그 함축적인 언어들 속에 담긴 심오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혹자는 그러지만 나에게 ‘시’는 무언가 비밀스런 글이다. 시인의 면모가 담긴 3부를 더디게 지나 4부, 5부는 또 격하게 공감하며 읽어 내려갔다.

그녀의 글은 곱고 감성적이기보다는 시원하다. 통쾌하게 뱉을 줄 알고 필요할 땐 주워담을 줄 안다. 생각하고 행동하고 때때로 반성하며 오늘날의 세태를 적당히 한탄하며 세상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특별할 것 같은 시인의 삶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 참 좋다.

그녀가 좋은 또 하나는 책에 대한 열정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는 그녀. 참 다행이다. 어른 아이 없이 손에 손마다 스마트폰을 움켜쥐고 고개를 숙이고 살아가는 오늘날, 아날로그 감성 물씬한 독자들은 어디에서 숨바꼭질하고 있는지, 이러다 글맛에 취해 사는 제대로 된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괜스레 걱정되었다. 제대로 된 책 한 번 만들어 보자고, 제대로 된 글 한 번 써보자고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 다행이다. 이제 제대로 된 독자들만 많으면 딱 좋겠다.

두 권의 시집을 펴내고 4년 동안 아직 시 한 편 못 쓰고 있다는 김민정 작가. 두 출판사의 편집자로도 활동 중인 그녀는 비통한 마음을 글에 담아냈다. “시집 한 권이 8,000원이라 하고 시집 한 권에 들어가는 시가 50편이라 할 때 고작 해야 한 편에 160원 정도 하는 시의 값어치를 나는 왜 계산이나 하고 있을까요?”

시 한 편이 자판기 커피 한 잔 값도 안 된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나는 왜 여태껏 모른 척했을까.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고는 자연스레 가격부터 확인하던 나였는데 이것 참 낯 뜨거워진다.

서점으로 가야겠다. 그녀가 대중에게 읽힐 고급 에세이집을 만들고 싶어 기획했다는 황현산 작가의 ‘밤이 선생이다’를 찾아야겠다. 그리고 성큼성큼 계산대로 걸어가야겠다. 이 한 권의 책 속에 담긴 작가의 삶과 애환과 노고의 시간을 값지게 계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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