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
  • 박상옥 <시인>
  • 승인 2014.03.0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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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시인>

시댁의 당고모님이 돌아가셨다. 둥근 얼굴에 큰 눈꼬리가 살짝 처진, 하얀 얼굴에 그다지 높지도 낮지도 않게 들어앉은 코에 얌전한 입매, 목소리는 늘 낮은 듯 엄격하면서 겸손했다.

적당한 살비듬이 있어 더 의젓한 품행이 무리 중에서 늘 시선을 끌었고, 이집 저집 큰일 때면 부르지 않아도 달려와 일손을 거들었다.

일할 때면 늘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니?” “어르신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딱 맞는 말씀을 하시되 늘 정중하고 겸손하시던 시 당고모님이시다.

시집가자마자 남편은 6.25 전쟁에 참여해 소식도 없고 자식도 없었으니. 친정에 머물며 집안 간 궂은일을 도우며 평생을 하얗게 홀로 사셨던 분이시다.

치매 때문에 딸을 알아봤다가 못 알아봤다가 하시는 어머니는 성정이 깔끔하여 솥뚜껑에 윤이 나야 하고 반짇고리는 정돈 되어야 하고, 행랑사람 부리는 것까지 엄격하여, 곳간의 독들은 쥐 한 마리 드나들일 없이 알뜰하였다.

지아비와 시모를 하늘처럼 받들어 모셨으니 여인의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목숨처럼 지키며 사셨던 이 시대 마지막 종가며느리다.

감시 대상이던 외가에서 일제의 색시공출을 피해 서둘러 가문만 보고 시집 와 올해로 여든아홉. 치매와 싸우면서도 당신께서 ‘색시공출’을 피해 시집왔다는 것을 명료하게 되새기곤 하신다. 일제 강점기 뿐 아니라, 분단역사 때문에 한을 품고 살았던 세대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나마 당시의 죄를 기억하는 일본의 몇몇 양심적인 인사가 사라지듯, 우리의 아픔을 기억하는 세대도 사라진다. 모든 것엔 시기가 있다. 남편이 행여 북쪽에라도 살아있길 간절히 바라셨던 당고모님은, 전쟁행불자 신고를 해놓고 기다리셨다. 끝내 살아서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픈 한(恨)을 품고 가셨다.

시간이 없다.

위안부 문제도 서둘러야 하고 화상상봉도 서둘러야 하고 왕래도 서둘러야 한다. 그동안 당사자들의 절실함이 반영되지 않았으니 시간은 처음부터 인식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손톱 밑에 가시를 뽑을 시간이 없다. 정치도 시대도 한 사람의 인생 앞에선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다 놓고 가는 저승길에 가시를 품고 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정치권은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이기 위해 이벤트 하듯 상봉행사를 해 온 것이 아닌 가 돌아볼 일이다.

계절은 순환하여 꽃피고 지고 다시 피겠지만 이산가족이나 위안부의 주인공에겐 기약이 없다.

박범신의 ‘은교’에서 이적요가 한 말에 빗대어 본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은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이 시대 우리들이 누리는 행복은 우리들만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듯, 역사적 피해를 온몸으로 살고 사라지는 세대의 한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봄바람이 분다.

이 봄바람 속에서 평생을 겨울로 살다가는 몇 남지 않은 노인들의 한이 꽃샘처럼 춥다.

역사적으로 촌음이 아까운 일들이야 많겠지만, 이제야 말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정치권에 있길 기도한다. 시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가 목숨의 허무를 숨기기 위한 신의 배려라면, 우리가 할 일을 자명하다.

박대통령의 진돗개 정신이 민족의 숙원인 통일과, 어불성설인 한.일 관계의 한 획을 긋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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