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심리학 Ⅱ
만남의 심리학 Ⅱ
  • 양철기 <충청북도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 교육
  • 승인 2014.03.03 2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충청북도학생외국어교육원 연구사·박사 교육심리전공>

교육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교육을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을 통한 변화’로 정의하고 있는 실존철학자 볼르노는 ‘만남은 교육에 선행한다.’라고 했다. 진정한 교육은 교사가 아이들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말이다.

볼르노는 만남을 통해 인간의 참된 변화와 본질이 성취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만남은 타자(他者)의 존재가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볼르노 만남의 교육적 특징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숙명적인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나 되게 하며 종래의 나를 극복하는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나아가 인간의 교육은 인간 안에 어떤 형태로 잠재되어 있던 본질이 도야(陶冶)를 통해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만남 안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 본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만남은 인간 실존의 핵심이며, 만남 안에서 진정한 나의 존재가 확립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있는 교육적 현상인 것이다.

만남의 철학자라 불리는 마틴 부버 역시‘교육은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라고 했다. 부버는 나(I)와 너(You)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인간의 만남을 대화적 관계와 비대화적 관계로 분류하고 대화적 관계, 만남의 관계가 가능할 때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나와 너의 만남은 나에 의해서 미리 계획되거나 예측될 수 없는 돌발적인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돌발적인 사건은 언제나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사건이다. 왜냐하면 만남을 통해서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또 나의 삶을 충만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존적 만남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만남이 언제나 나의 계획과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하게 찾아오는 운명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또한 모든 만남은 숙명적이며 만남이 어떤 사람에게 닥쳐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전체적으로 사로잡게 되며, 이러한 만남은 계획할 수 없고 예정할 수 없지만, 인간으로 하여금 결단하게 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한다.

교사와 학생의 만남 또한 운명적 사건이다. 교사와의 만남을 통해 학생은 생(生)의 큰 방향을 틀 수 있고 또 생의 새로운 목표를 세울 수 있으며, 생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30여년 전 초등학생시절, 선생님이 꼬불꼬불 산길을 걸어 고개를 넘어오시면 수줍어 산으로 들로 숨던 기억이 생생하다. 왜 그랬을까? 어둑어둑해질 무렵 약주한잔 드시고 돌아가시는 선생님의 뒤를 몰래 몰래 한참을 쫓아 갔던 기억. 그 당시에는 귀했던 계란 몇 개로 선생님을 대접하시던 어머니의 모습.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는 것이 참 싫기도 하면서 기다려졌던 시절, 가정방문 기억이 아련하다.

그 때 선생님과 누추한 우리 집에서 만나 나눴던 몇 대화들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 때 우리 부모님께서 나에 대해 하셨던 말 또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날 선생님께서 나에 대해 이야기 해 준대로 교사가 되었다. 운명적인 가정방문,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꿈을 잃고, 교사들은 가르칠 의욕을 잃고, 학부모와 사회는 학교를 불신한다.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과외교사를 찾아 쏜살같이 사라진다. 아이들과 몇 마디 나누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 만남의 부재….

3월, 새로운 교실과 학급에서 교사와 아이들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도교육청을 떠나 새 직장에서 새 출발하는 필자 또한 이곳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소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