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
겨우살이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4.03.0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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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오래전 남편과 겨우살이를 찍으러 한계령엘 간적이 있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겨우살이는 보이지 않고 갈참나무들만 싱그럽게 서 있었다. 겨우내 얼었던 계곡물도 소리 내 흐르고, 내리막길이 가파르긴 했지만 나무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과 온갖 새 울음소리를 들으니 세상 부러 울 것 없는 시간이었다. 그깟 사진 찍으면 어떻고 못 찍으면 어떠하랴

동행을 하면 남편은 목적달성을 위해 숲속을 오르락내리락 열심히 뒤지고 나도 따라 메모지에 적으며 조수노릇을 해야 했다. 이 날은 꾀가 나서 먼저 내려가 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도 공치고 내려왔다. 사진을 못 찍어서 어떻게 해? 했더니 괜찮다면서 그래도 아쉬운지 원주 쪽으로 가자고 하더니 갑자기 도로 옆에 차를 세웠다.

난 앞으로 쏠린 몸을 일으키며 “여기에 있는가 보구나!” 짐작하고 남편을 바라보니 저기 보인다고 했다. 참나무 겨우살이 라고 했다. 참나무 키가 워낙 커서 망원렌즈를 끌어당겨 보니 참나무에 둥지같이 둥글게 붙어 자라고 있었는데 잎은 마주나 있었고 꼭 바소꼴로 생긴 것이 잎자루도 없고 가지 끝엔 노르스름한 색깔의 꽃이 피어 있었다.

이 식물은 달기 때문에 새들이 먹고 가지위에 배설물을 싸면 늘어붙어 싹이 튼다고 한다. 참나무 가지에 사계절 붙어살면서 영양분을 다 빨아먹고 자라 결국엔 나뭇가지를 말라죽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저 스스로는 사람에게 약용으로 쓰이게 하며 이익을 주는 기생식물이다. 

숙부님 댁에 숙부님친구가 매일같이 찾아들던 때가 있었다. 동고동락 하면서 지내오길 몇 해이더니 빚보증을 서게 하고 결국엔 숙부님 몸에 붙어 어느 틈엔가 기생식물이 되어 친구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아갔다. 결국 숙부님은 파산선고를 내게 했다.

왜 하필 그런 일에 우리 인자하신 숙부님일까. 친구에 대하여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고 모든 일은 숙부님 선택이었겠지만 생각만 하면 부글부글 속이 끓어오른다. 지금 그 친구란 사람은 버젓이 근처 암자에서 스님행세를 하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지 사람의 일은 알 수가 없다. 

겨우살이는 남의 몸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은 남에게 이익을 준다. 그 사람도 친구를 못살게 하더니 자신은 스님이 되어 자비라는 덕목으로 남들에게 베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용서받고 있는 중일까 궁금할 뿐이다. 생전에 숙부님은 마음을 저 혼자 키워가는 강물이 되고 싶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 조용한 강 속에서 물고기도 자라고 풀도 자랄 수 있기에 언제나 잔잔한 강물이 되고 싶다고 하셨다.

숙부님 마음의 강 속으로 스님친구가 다시 찾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일까? 숙부님이 끔찍하게도 믿고 의지했던 그 친구가 숙부님 마음을 닮아 새로 태어나서 겨우살이 같은 존재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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