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욕심
일과 욕심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4.02.2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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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일과 욕심을 이야기하려면 3단계가 필요하다. 내가 그렇게 바뀌어왔다는 이야기다. 과정마다 똑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욕심과 관련된 나의 변천사다.

첫째, 일 욕심이다. 나도 욕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때 반문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 개인 욕심인지, 아니면 일 욕심인지 반문한다. 다행히도 그러는 나에게 ‘그래, 너는 개인 욕심이야’라고 반박을 당해본 경험이 아직까지는 없다. 일 욕심을 부리다보면 그것이 개인 욕심처럼 보일 수 있는 개연성은 높다. 안타깝게도 개인 욕심이 일 욕심으로 가장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렇지만 일도 하고 싶은 사람이 많으면 함께 나누어야 한다. 나눌 수 없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는 경쟁이 벌어질 텐데, 민주사회에서의 선거가 그것이다. 일 욕심도 좋은데 누가 더 일을 잘할까를 뽑는 것이다. 누가 더 잘할까에 대한 판단도 시대와 가치관에 따라 다르니 선거라는 형식을 통해 사람을 고르는 것이다. 내가 일 욕심이 많다고 그것이 곧 때에 맞는 것도 아니고 늘 사람과 어우러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겸손이 필요하다. 특히 자아에 대한 겸손 말이다. 내가 아니어도 잘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둘째, 일은 쉽다. 그런데 일이 어려워지는 것은 거기에 욕심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욕심을 없앨 때 일은 환하게 절로 드러난다. 그런데 일을 하는 과정에 자기의 욕심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이 꼬인다. ‘떡이라도 하나 안 생길까? 예쁜 놈 떡 하나 더 주고 싶은데. 아니, 저놈만큼은 떡을 줄 수 없어.’ 이런 식의 마음이 개입되면서 일이 엉킨다. 그래서 일 앞에서는 늘 자기수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매번 일만을 보려고 애써야 한다. 일 옆의 잡다한 많은 것을 보기 시작하면 일이 어둠에 가려버리고 마침내는 일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일은 없고 욕심만 남게 된다. 불 보듯 �!祁Ⅵ� 내 앞으로 불을 갖다 놓으려다, 남에게 불을 안 주려다 자기 손이 데이는 것도 모른다. 만약에 일이 꼬였다싶으면 제발 그냥 일만 바라다 보기 바란다. 일은 단순하다. 나의 마음이 복잡할 뿐이다.

셋째는 이렇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욕심을 버리면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세상사라서 세월이 흐르면서 또 다른 결론을 얻게 되었다. 욕심을 버리라는 것은 나에게는 가능할지는 몰라도 모든 이에게 바라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에게는 명령을 해도 되지만, 남에게는 명령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해서도 안 되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그래, 너는 욕심을 비워.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욕심을 비우라고 하다가는 일을 하지 못해. 결국 일이란 욕심의 조정이야.’ 일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욕심이 손아귀를 뻗치고 있었다. 그것끼리의 다툼이 일의 속사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일이란 무엇인가? 일은 바로 그 욕심의 조정이었다.

일을 하고 싶어 자기만을 생각한 것이 처음이었다면, 일에서 욕심을 배제하기만 하면 일이 환하게 보인다고 깨달음을 자랑한 것이 그 다음이었고, 마침내는 일은 욕심의 조정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어쩌면 노회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욕구의 세상을 그리다가, 욕망의 배제를 애썼고, 사욕의 조화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내 주위에는 좋은 사람이 정말 많다. 내가 욕심을 부릴 때마다 그분들은 늘 나를 일깨워준다. 그분들을 위해서 무슨 일인가 해야겠다는 또 다른 욕심 때문에 나는 여전히 괴롭지만, 그분들은 아마도 그런 것도 바라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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