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
무명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
  •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 승인 2014.02.2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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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나는 무명의 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 전투에 이기는 것은 위대한 장군이로되 전장에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무명의 병사로다. 새로운 교육제도를 만드는 것은 이름 높은 교육가로되 젊은이를 올바르게 이끄는 것은 무명의 교사로다.” 헨리 반 다이크의 ‘무명교사 예찬’에 나오는 글이다.

이제 2월말이면 평생을 인재양성을 위해 교육에 헌신해 온 교육자들이 명예로운 정년퇴직으로 정든 교단을 떠난다.

스승은 빛, 소금, 밀알이 되어야만 하는 참으로 어려운 성업이다. 평생을 아이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고, 희망의 밀알이 되어 주다가 이제 명예로운 퇴임을 하는 교원들의 노고에 위로와 큰 박수를 보낸다.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비행사는 그의 비행시간 합계를 몇 분까지도 정확하게 계산하여 자신의 평생기록으로 남기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또 조종간을 잡는 순간에도 혼신을 다하고 그의 전 생명을 바치는 것과 같이 교육자들도 교단에 섰던 시간과 연구에 바친 시간의 기록을 남기는 것은 물론 교단을 떠나는 순간까지 조종간을 잡는 비행사의 숭고한 정신자세로 긍지와 사명감을 갖고 교육과 연구에 몸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 교육현장에는 많은 교사들이 20평도 안 되는 교실을 생명의 성처럼 알고 학생교육에 온갖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교단을 지키는 근본적인 이유는 어떤 사회적인 지위 때문이 아니요, 오직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성장과 함께 보람을 갖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행복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보람을 느끼며 그것에 몰두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스승은 운명이다’ 알베르 카뮈의 말이다. 한 인간은 어떠한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이 결정지어 진다는 말이다.

한 사람의 교사, 특히 초등교사가 한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과 폭은 인생 전체를 가름한다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일 한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이 교사가 되어 체념과 실의에 빠져 목매인 송아지처럼 끌려가고 있다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이 이상 더 큰 비극과 고통과 불행은 없을 것이다.

학창시절 존경할 만한 선생님이 별로 없다는 일부 조사결과를 대할 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스승을 잘 만났더라면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지 않았을 사람이 우리 주위에 혹시 없나 한 번 되돌아보자.

헤겔은 “이 세상에 위대한 일치고 정열 없이 수행된 것은 없다“고 했으며, 칸트는 철학에 미쳤고, 슈바이처는 환자에 미쳤으며, 페스탈로치는 교육에 미쳤다. 미치지 않고는 위대한 교육자가 될 수 없다.

어느 도인(道人)의 “백년을 부끄럽게 사는 것 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 없이 살아라. 밝은 내일을 바라거든 좋은 씨앗을 심어라”라는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다.

끝은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이다. 언제나 시작보다는 끝이 중요하다. 첫 인상은 이미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끝 인상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

2월말로 정든 교단을 떠나는 교원들의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고 행복한 제2의 인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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