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통의 메시지
세 통의 메시지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14.02.2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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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요즘 나는 맹동에서 날아온 휴대폰 문자 때문에 심장이 가쁘게 숨을 쉬는 듯 버겁다. “창옥씨 우리 집 오리도 끌어 묻어야 된대요. 지금 손이 너무 떨려서 글씨도 안 써지네요.” 글공부를 하며 알게 된 언니와는 가끔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내게 문자를 보냈을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온 가족이 매달려 애지중지 길러낸 오리들이다. 더 황당한 것은 농장의 오리들이 AI에 감염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먼저 인근 농가에서 발병이 되었다는데 하필 제한구역 내에 농장이 있었던 모양이다. 말로만 듣던 예방적 살 처분이라고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이겠는가. 아마도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심정일 것이다. 언니는 감염경로를 막겠다는 수단으로 살 처분한다는 것에 분노했다. 더군다나 병도 걸리지 않은 건강한 오리들마저 땅속에 묻는 일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며 괴로워했다. 무섭고 끔찍한 현실을 감당해야만 하는 그녀를 위해 위로 할 말이 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가슴으로 서늘하게 바람이 인다. 나 역시도 치킨 점을 운영하기 때문에 조류독감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각종 매스컴에서 쏟아내는 살 처분 소식을 들을 때마다 똑 같은 악몽을 되풀이해서 꾸는 것 같다. 아마 2007년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AI란 용어도 생소 했던 시기였고, 치킨 점을 열고 일 년 만에 당한 일이어서 많이 놀라고 당황했었다. 하루하루 매출이 곤두박질쳤고 급기야는 업종 변경까지 고려해야 했다. 그리고 날마다 예방적 살 처분 광경을 적나라하게 보도하는 텔레비전을 보며 불안에 떨어야했다. 충분히 익혀 먹으면 안심해도 된다고 하면서 왜 동시에 그 끔찍한 살 처분 장면을 보여주는지 좁은 소견으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끔찍한 살 처분 장면을 보고난 후, 정말로 안심하고 오리고기 닭고기를 먹고 싶은 간 큰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녀가 두 번째 문자를 보내왔다. 이번에는 사진이다. 어림잡아도 수천마리는 넘어 보이는 오리들이다. 아마도 아기 오리였을 때 농장에서 찍어놓았던 모양이다. 털이 보송보송하니 마냥 귀엽다. 그 많은 오리들을 애지중지 길러 출하만 하면 되는 것을 살 처분한다고 하니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이겠는가. 간간이 소식만 귀동냥하는 나도 이렇게 가슴이 서늘하고 아픈데 직접 당하는 사람의 심정은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오리 농장은 언니네 가족의 희망이며 미래였다. 그 희망과 미래가 예방적 살 처분결정 때문에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내가 무지해서 그런가. 아직도 예방적 살 처분의 정의를 잘 모르겠고 이해도 안 된다. 하지만 발병하고 난후에 살 처분하는 것이 최선이라면 상식적으로 너무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AI때문에 불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살 처분에 참여하고 난후 후유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닭과 오리를 재료로 생계를 유지하는 수만의 자영업자들도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또 다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순간 소름이 돋는다.

“오늘 살 처분했어요”

이건 재앙이다. 정말로 살 처분 말고는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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