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풍광
이른 봄 풍광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2.2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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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 중 2월에 있는 절기(節氣)는 입춘(立春)과 우수(雨水)다. 이 두 절기(節氣)는 계절로는 겨울에 속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봄의 시작이라고 칭하면서 사실상 봄으로 간주하곤 한다. 이는 삭막한 겨울이 하루 빨리 가고 화사한 봄이 조금이라도 더 이르게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이렇듯 이른 봄 2월은 겨울과의 작별은 서둘러 끝내고 새봄맞이에 들뜬 설렘의 시간이다. 설레는 마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서 솟아나는 것이니. 갓 돋아난 파란 새싹을 보고 곧 펼쳐질 꽃 잔치를 떠올리는 것이야말로 이른 봄 설렘의 진수가 아니겠는가? 당(唐)의 시인 양거원(楊巨源)의 눈에도 이른 봄의 풍광은 다를 바 없었다.

◈ 장안성 동쪽 교외의 이른 봄(城東早春)

詩家淸景在新春(시가청경재신춘) : 시인들의 맑은 경치는 새봄에 있나니

綠柳纔黃半未勻(녹류재황반미균) : 푸른 버들에 노란 빛이 아직 절반이 되지 않네

若待上林花似錦(약대상림화사금) : 궁궐 숲 속 꽃들이 비단 같아진다면

出門俱是看花人(출문구시간화인) : 대문을 나서면 모두가 꽃구경 인파들이네

 

※ 과연 시를 쓰는 사람들(詩家)의 눈에는 일 년 사계절 중 어느 때의 풍광이 가장 맑게 보이는 것일까? 시인들에게는 새봄의 풍광이 바로 맑은 풍광(淸景)이라고 시인은 단언한다. 시인이 말하는 맑은 풍광(淸景)이란 아마도 세속적인 욕망이나 인사(人事)의 번다함으로부터 벗어난 고고한 경지의 정신세계를 구현한 풍광일 것이다.

그러면 시인은 도대체 새봄의 어떠한 모습에서 맑은 경지를 느꼈을까? 새봄의 풍광을 대표하는 버드나무의 파릇파릇함에서 시인은 그것을 느꼈다. 이른 봄 버드나무 잎은 푸른빛과 노란빛이 섞여 있는데 노란빛이 막 들기 시작하면서 미쳐 푸른빛과 반반 균형을 맞추기 직전의 자태를 시인은 맑은 풍광(淸景)이라고 본 것이다. 시인이 나가 있는 곳은 왕실의 숲인 상림원(上林苑)이었는데 이 곳의 특징은 가꿈이다. 인위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이곳에 머지않아 꽃들이 만발할 것이고 그 꽃들은 비단처럼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죄다 집 밖으로 나와 꽃 구경에 나설 것이다. 화려하고 왁자지껄한 봄의 모습에 대한 시인의 기대감이 담겨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봄 풍광은 시인이 가장 기리는 맑은 풍광(淸景)은 아니다. 시인의 의견대로라면 시를 쓰는 사람들(詩家)에게 있어서 맑은 풍광(淸景)은 새봄(新春)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를 쓰는 사람들(詩家)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풍광에 대한 안목(眼目)이 다른 것이다. 시를 쓰지 않는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봄이 무르 익어 꽃이 만개한 풍광이, 푸른 버드나무 잎에 노란빛이 채 반도 되지 않게 섞여 있는 것이 고작인 이른 봄의 풍광보다 훨씬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시인은 만개한 꽃 보다는 꽃이 만개하여 보여 줄 아름다운 모습에 대한 기대감을 즐기는 것이리라.

늦은 겨울이자 이른 봄인 2월이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은 다분히 복합적이다. 겨울이 끝남에 대한 안도감과 다가오는 봄에 대한 기대감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아직 만개한 꽃의 화려함은 볼 수 없지만 정작 사람들을 더욱 들뜨게 하는 것은 다가올 봄의 화려함 그 자체보다는 그것에 대한 기대감이다. 피어있는 꽃보다 필 꽃이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고 이러한 의미에서 이른 봄은 어느 철보다 아름다운 시기라고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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