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에게 준 꽃
손녀에게 준 꽃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02.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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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할머니 제가 물 줄게요.”

창가에서 내게 건네받은 화분을 거실로 옮기며 손녀가 하는 말이다.

석곡 화분에 손녀는 작은 물뿌리개로 물을 준다. 화분 밑으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신기해한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쟁반에 흐른 물을 보며 왜 물이 새느냐 묻는다.

주말에 손녀딸이 들렀다. 적적했던 집안에 생기가 돈다. 2주 전 학습발표회 때 보고 또 보는 것이어서 반가움이 더 했다. 언제 보아도 사랑스러운 것이 어린 손녀들이다. 사람들의 말처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피붙이. 거실에 들어서자 손녀 둘은 함께 놀자고 내 손을 피아노가 있는 곳으로 잡아끈다. 난 하던 일을 멈추며 그들과 한마음이 된다.

한동안 집안을 뛰어다니다 쉴 때 다과를 나누며 손녀는 이런 말을 했다. “할머니 저는 꽃을 꺾으며 놀고 싶어요.” 아이답지 않은 그 말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온유야 지금은 겨울이라 아직 꽃밭에 꽃이 없어. 봄이 오면 꽃이 많이 필 때 할머니와 함께 놀자!”라고 했다. 손녀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손녀의 ‘꽃’이라는 말에 마음에 파문이 인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손녀가 기특했다.

창가에 분홍색으로 핀 석곡이 눈에 들어왔다. 5년 정도 정성 드려 키웠다. 아무에게도 정을 떼기가 아쉬워 나누지 않은 꽃이다. 몇 번인가 지인들에게 분양하려 했었지만, 그때마다 함께한 시간이 많아 망설였었다. 그렇게 아끼던 꽃. 그리고 올해 고운 꽃을 열두 송이나 피웠다. 그 꽃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꽃을 기르다 보면 자식처럼 정이 들어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나 보다. 키는 작지만 일 년 초도 아니고 몇 년씩 키워야 꽃이 피기에 그런 것 같다. 난 그 꽃을 미련 없이 손녀에게 주었다. 손녀에게 그 꽃을 건네 줄 때 마음은 서운하지도 않았다. 아직은 일곱 살 어린 나이지만 나와 같은 마음이 오가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지난여름 우리 집에 왔을 때에도 핑크색 플록스와 보라색 달개비를 꺾어 손에 들고 그렇게 좋아했다. 나비처럼 나풀나풀 꽃과 함께 어우러져 뜰의 한 식구가 되기도 했다. 짧은 시간 오가며 내 정서를 닮았는지 우리 집에 들를 때마다 꽃에 관심을 갖는다.

아파트에 살아 자연을 별로 접하지 않기에 아쉬움이 많이 있다. 그나마 할머니 집에 올 때라도 자연을 접하게 하고 싶어 지난봄부터 가을까지 작은 꽃밭으로 데리고 나갔더니 이곳에 올 때마다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도 아직 겨울이 가시지 않았는데 꽃이야기를 한다.

따뜻해지면 흥덕사지로 데리고 가서 숲의 모습을 보며 자연과 더불어 놀게 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 자랄 때처럼 할머니와 함께 살지 않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꽃을 손녀에게 건네며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생명이 있는 것을 가꾸고 그들과 지내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스스로 깨달으며 조금씩 앎의 범위를 넓혀가는 것,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먼 훗날 보람의 꽃으로 필 것을 생각하면 희망이 솟는다.

사회의 흐름에 따라 통학버스의 좌석에 앉아 작은 시설을 오가며 틀에 짜인 과정에 따라 머릿속을 채우고 지내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손녀가 세월이 지나 자랐을 때 할머니가 준 꽃을 기억하며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바람을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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