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심리학
만남의 심리학
  • 양철기 <충북교육청 장학사·박사>
  • 승인 2014.02.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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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충북교육청 장학사·박사>

교육학의 큰 두 개의 흐름은 미국의 행동주의와 유럽의 실존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행동주의는 미국의 심리학자 스키너(B. F. Skinner)로 대표되며, 유럽의 실존주의는 볼르노(O. F. Bollnow), 부버(M. Buber) 등으로 대표된다. 긴장을 하면 손에 땀이 많이 나는 다한증을 가진 내담자를 행동주의에서는 대표적으로 체계적감감법(systematical desensitization)을 통해 치료한다. 내담자가 처한 긴장의 강도를 조금씩 높여 가면서 손에서 땀이 나지 않게 단계적으로 치료한다. 실존주의에서는 역설적 의도(paradoxical intention) 같은 기법을 사용한다. 땀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생각하고 두려워 할 때마다 땀이 줄줄 흐르는 내담자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땀이 날 때마다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땀을 흘리는지 보여주게 하는 것이다.

행동주의는 대체로 통계적, 조작적 방법을 통해 인간행동의 점진적 성장과 변화를 추구며, 실존주의는 인간의 운명적 만남·각성·위기·직면 등을 통한 단속적(斷續的)이고 급진적 변화를 강조한다.

1993년 입적한 성철(性澈)스님은 돈오돈수(頓悟頓修·단박에 깨쳐서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경지)와 돈오점수(頓悟漸修·단번에 깨달아서 뒤 번뇌를 차차 소멸시킴)로 불교계에 수행에 관한 뜨거운 논쟁은 불러왔다. 성철스님의 돈오돈수는 볼르노와 부버의 ‘만남’과 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 행동주의적 기법은 점수점오(漸修漸悟·차츰 닦아가면서 조금씩 깨달음)와 맥락을 같이 한다.

지나온 삶을 뒤돌아 볼 때, 현재의 자기는 어떻게 현재의 나로 자리 잡고 있는가? 운명적으로 그 여인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때 그 자리에서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때 그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볼르노에 따르면 인간은 삶의 일상을 단절시키는 위기, 불안, 죽음, 한계상황, 만남과 같은 중대한 운명적 사건들 안에서만 근본적으로 자신의 참된 실존(實存)을 경험을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비연속적 경험으로 인한 실존의 자각은 그 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앞과 뒤의 삶을 구분하는 단순한 단절이 아니라 뒤의 새로운 삶의 질서를 위한 토대가 된다. 단절의 순간 안에서 체험된 삶과 사람됨의 본질은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되고 새로운 존재의 지평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실존적 만남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만남이 언제나 나의 계획과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하게 찾아오는 운명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또한 모든 만남은 숙명적이며 만남이 어떤 사람에게 닥쳐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전체적으로 사로잡게 되며, 이러한 만남은 계획할 수 없고, 예정할 수 없지만, 인간으로 하여금 결단하게 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한다.

선생(先生)과 학생과의 만남은 어떠할까? 선생은 학생이 만남에 이르도록 하는 매개자이기도 하고, 학생은 바로 그러한 매개자로서의 선생 자신과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그것은 선생과 학생 사이에 참다운 만남이 일어나려면 선생은 선생이기를 그치고 학생은 학생이기를 그쳐야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교실현장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사무실, 작업장, 안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꼰대와 멘토의 차이는? 부하직원? 후배? 자녀와 한잔 하면서 자신의 성공경험담을 널어놓는다면 꼰대, 자신의 실패경험담을 늘어놓는다면 멘토다. 나는 나이기를 너는 너이기를 그칠 때 진정한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교육계의 2월말은 조금 뒤숭�!求�. 헤어짐과 만남이 교차하는 인사철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자리로의 이동으로 인한 만남은 언제나 설레임과 두려움을 가져다 주지만 새로운 사람, 나(Ich)와 너(Du)의 만남으로 단박에 도(道)를 깨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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