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달
정월 대보름 달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2.17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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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인간에게 달만큼 친근하고 푸근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달만큼 변함없이 꾸준하게 인간에게 호감을 주는 존재가 또 있을까? 이처럼 달은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지만, 어떤 때는 세상 무엇보다도 실용적인 개념으로 인간에게 접근한다.

사람들은 달을 보고 한해의 농사를 점치기도 하고 설계하였던 것이다. 특히 한해의 첫 달인 정월하고도 보름에 뜨는 달을 특별히 대보름이라 부르며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곤 하였다. 이 대보름을 보며 모든 재앙이 물러나고, 풍년이 들 것을 기원하였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정월 대보름달을 보며 바랐던 것도 별 다를 게 없었다.

◈ 정월 대보름달(正月十五日夜月)

歲熟人心樂(세숙인심낙) : 한해가 익으니 사람들 마음 즐거워

朝遊復夜遊(조유복야유) : 아침에 노닐고, 밤에도 또 노니네

春風來海上(춘풍내해상) : 바다 위로 봄바람 불어오고

明月在江頭(명월재강두) : 강물 위에 밝은 달이 떠 있네

燈火家家市(등화가가시) : 집집마다 거리마다 등불 밝히고

笙歌處處樓(생가처처누) : 누대마다 피리소리 노랫소리

無妨思帝里(무방사제리) : 장안 생각나는 것은 어찌 할 수 없지만

不合厭杭州(부합염항주) : 항주 고을을 싫다고도 할 수 없으니

 

※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한해 농사가 풍년이 되어 집집마다 곳간을 그득 채우고 나면, 사람들은 농한기인 겨울이 마냥 여유롭고 즐겁기만 하다.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고 이곳저곳 평소 가보고 싶었던 데를 돌아다니며 즐겁게 소일하였다. 시인이 아침에 노닐더니 또 저녁에 노닌다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음력 정월 보름이면 이미 입춘(立春)도 지나 제법 봄기운이 느껴지는 시기이다. 시인이 거처하는 항주(杭州) 지역은 바다에 연한 곳인지라, 봄바람이 바다 위로 산들산들 불고 있다. 그리고 강가에는 보름달이 떠 있었다. 정월 보름이었던 것이다. 정월 보름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은 집집마다 등을 밝게 켜 매달았고, 여기저기 누대(樓臺)에서는 피리에 맞춰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렸다. 그야말로 한겨울 밤의 대보름 축제였다. 타향에서 정월 대보름 밤을 맞은 시인은 온 가족을 남기고 온 장안(長安)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시인이 현재 머물고 있는 항주(杭州)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고향과 가족이 그립기도 했지만, 정월 대보름을 나름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는 현지의 모습도 충분히 좋았던 것이다. 이처럼 정월 대보름은 고향 그리움이나 가족 걱정을 떠오르게 하기 보다는 풍년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잔치 분위기를 나게 만든다.

입춘(立春)을 지나 맞는 정월 대보름은 이제 갓 시작한 한해의 풍년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사람들을 들뜨게 한다. 또한 곧 닥칠 봄에 대한 기대로 묵은 것들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날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정월의 보름달은 그리움이나 상념이 아니라 기대와 설렘이다. 달 중에서 가장 큰 달이기도 한 정월 대보름처럼 환하고 커다란 희망이 이제 막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사람들의 가슴 가슴에 가득할 때, 세상은 정말 살 맛 나게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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