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3)-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직지 책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3)-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 박숙희 <아동문학가·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
  • 승인 2014.02.1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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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역사이야기
박숙희 <아동문학가·청주시문화관광해설사>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와 ‘1인1책 펴내기’ 등은 청주 혹은 충북도에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의 하나다. 그리고 이것은 흥덕사에서 1377년에 간행된 현존 세계 最古(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의 이념을 법고창신(法古創新)하고 있는 모범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런 추진 사업들이 계속 번창하길 바라는 것은 비단 우리 청주 시민 혹은 충북 도민만의 염원이 아닐 것이다.

'직지' 속에 오묘한 이치 있으니, 세 번째 이야기는 ‘직지’하권 3장과 4장에 나오는 지한 선사(志閑禪師)의 말이다. 전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부산 화암사 주지 각성 스님의 직지 번역 및 강해(1988년) 등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지한 선사가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본래 모습이란 없는 것이고,

큰 작용이 앞에 나타나도 시절을 말하지 않느니라.

(不生想念, 本來無體.

大用現前, 不說時節.)”

후에 그가 임종을 하려고 할 때 시중드는 자(侍子)에게 물었다.

“앉아서 간 사람이 누구더냐?”

시중드는 자가 말하였다.

“승가 스님입니다.”

그가 또 물었다.

“서서 간 사람은 누구더냐?”

시중드는 자가 말하였다,

“승회 스님입니다.”

이에 지한 선사는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두루 걷고는 손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숨을 거두었다.

위 이야기 서두의 ‘불생상념 본래무체’는 생각이란 것 자체가 원래 모양(?)이 없는 것인데 모두들 그것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고, ‘대용현전 불설시절’은 큰 쓰임 혹은 행위라는 것들 역시 큰 시간 속에서 보면 무용함과 같다는 말이다. 앞의 글이 불교의 ‘무아(無我)설’ 혹은 ‘제법무아(諸法無我)’와 유사하다면, 뒤의 글은 ‘공(空)사상’ 혹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닮은 글이다.

그리고 위에서 앉아서 갔다는 것은 좌탈(坐脫)을 말하고, 서서 갔다는 것은 입망(入亡)을 말한다. 승가와 승회 두 스님 모두 수양 공부를 잘한 탓에 한 분은 좌탈을 했고 한 분은 입망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시중드는 자의 말을 들은 지한 선사는 부처님이 주행 칠보 하듯이 두루 칠보를 걷고는 차렷 자세로 손을 내리고는 서서 임종을 맞았다고 한다. 결국 지한 스님은 걷다가 열반에 들은 모양새다.

이 글은 현재라는 시간과 공간에 사로잡혀서 자기 생명을 비롯한 많은 것들에 집착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하나의 흘러가는 구름과 다를 바 없음을 역설하고 있음이다.

원오극근 선사의 《원오심요》에는 生死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태어나는 것은 적삼을 입는 것과 같고(生也着衫), 죽는 것은 바지를 벗는 것과 같다(死也脫袴).”

왜 우리가 마음을 크게 가져야 하는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세계, 그래야만 겨우 보이는 진정 행복한 열반적정의 세계! 그것이 소수의 큰 스님들에겐 보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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