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정선옥 <음성도서관장>
  • 승인 2014.02.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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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정선옥 <음성도서관장>

고등학교 때 번역가의 꿈을 꾸면서 영어영문학과 지망을 희망했다. 담임선생님의 “여자는 도서관학과가 최고다. 시집도 잘 갈 수 있어” 하는 말씀에 얼떨결에 급선회했지만, 대학에 가서도 영자신문사를 기웃거렸다. 용기를 내어 기자 부문에 지원했다가 외국인 인터뷰어 앞에서 우물쭈물하던 나는 보기 좋게 탈락했고 번역가의 꿈은 과감히 포기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있어 외국 문학 작품을 읽을 때면 번역자를 확인하게 된다.

우리나라 번역가 중에는 이윤기, 김남주, 김화영을 좋아한다. 김남주, 김화영이 프랑스 문학을 번역했다면 이윤기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이탈리아 문학을 주로 번역했고 소설가이기도 하다.

도서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이윤기 저)’는 글쓰기와 번역, 언어, 문학에 대한 에세이로 최고의 번역가가 되기 위한 저자의 노력, 철학을 담고 있다. ‘길을 따르지만 길에 갇히지 않는 말, 정교하고 섬세하면서도 살아 펄떡이는 말에 대한 집착을 읽었다’는 서문의 표현처럼 번역가 이윤기는 자유로운 영혼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닮고 싶어 했고 좋아했다. 이 책의 제목에 조르바가 포함된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면 초단은 되며,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 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생각을 놓쳐버릴 수 있다는 글쓰기의 기본을 알려준다.

주변의 30~40대에게 외국에 나가라고 등을 떠민다는 유연한 사고가 신선하다.

좋은 번역은 사전을 자주 보라는 사전과의 싸움, 우리말의 어구와 어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단문으로 만들며, 살아 있는 표현, 전부터 우리가 써왔고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을 찾아내는 일임을 강조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도서 ‘장미의 이름’을 번역했지만 오역과 넘겨짚기 해석의 오류를 인정하고 개역을 통해 번역을 바로잡은 일화는 그의 철저한 직업적 사명감을 볼 수 있다. 외래어의 남용을 걱정하면서도 청소년들이 사이버공간에서 쓰는 문법 파괴 글에 대해서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내가 부리는 말, 내가 부릴 말은, 되도록 많은 사람이, 되도록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한자나 영어를 병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극소수의 독자에게나마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필요를 느낄 때만 그렇게 한다. 하지만 한글 표기만으로도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져서 그럴 필요를 느낄 때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 책은 전문적인 글쓰기 책은 아니지만 우리가 말과 글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말의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하는지 묻는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그의 번역 글을 접하기는 했지만 우리 말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한 줄의 번역을 위해 고심하는 그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번역가의 꿈을 다시 키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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