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와 발렌타인데이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와 발렌타인데이
  • 김명철 <충북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 승인 2014.02.1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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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명철 <충북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는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하느님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이 글은 32살의 나이로 장렬하게 순국한 안중근의사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쓴 마지막 편지의 내용이다. 안중근(본명 응칠)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개화사상가 안태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일본 제국주의 중심 인물로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대한국 의군의 참모장 자격으로 동양 평화를 위해서 제거했다. 당시 러시아군에 의해 체포될 때 의사는 러시아말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체포된 후 11월3일 여순 감옥으로 압송됐으며, ‘국사범’으로 분류되어 독방에 구금됐다. 1910년 2월14일 일본인 판사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아 3월 26일 어머니가 보내온 한복으로 갈아입고 10분간 무릎 꿇고 기도한 후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사형 집행 직전 마지막 유언으로 ‘나는 동양의 평화를 위해 결행한 것이므로 한일간에 화합하여 동양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라고 한 뒤 의연한 자세로 순국했다고 한다.

2월14일,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고 순국을 준비한 이날을 우리는 오히려 밸런타인데이로 기억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우리를 정신 빠진 사람으로 만들고, 이렇게 들뜨게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일본 상인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밸런타인데이는 군인들의 결혼을 금지하던 황제의 명령을 어기고 군인들의 혼배성사를 집전했다가 269년(또는 270년) 2월 14일 순교한 성 발렌티누스를 기념하기 위해서 시작됐다.

1936년 일본 고베의 한 제과업체가 밸런타인 초콜릿 광고를 하면서 ‘밸런타인데이는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인식하도록 했다. 그 후 1958년 모리나가 제과에서 ‘2월 14일 하루만이라도 여성이 남자에게 자유로이 사랑을 고백하게 하자’는 캠페인을 하면서 일본 전체에 유행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일본식 밸런타인데이 풍습을 우리나라의 한 제과회사에서 들여와 초콜릿을 판매하는데 이용했다.

중국정부는 지난 1월19일 하얼빈 역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현장에 기념관을 건립해 개관하고 안 의사 일생 사진과 자료들을 전시했다고 한다. 달려가서 보고 싶다. 그리고 제국주의 침략의 망령이 부활하는 듯한 최근 일본 정부의 행태를 보면서 다시 한번 동양평화를 외쳤던 안중근 의사를 그려본다. 천국에서 조국의 진정한 독립과 통일을 간절히 바라고 계실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며, 2월14일은 밸런타인데이가 아니라 온 국민의 가슴에 태극기를 다는 안중근의 날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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