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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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4.02.1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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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구락부(俱樂部)라는 말이 있다. 젊은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외교구락부’라는 소리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정치적인 일에서 나름 영향력을 미치는 모임이다. 그런데 그 구락부라는 말은 ‘클럽’(club)의 중국식 발음에 의미를 집어넣어 만든 것이다. ‘함께 즐거운 모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소리가 뜻보다 먼저임은 틀림없다. 우리식 발음으로 하자면 ‘크러브’(쥐러부) 정도에 해당된다.

우리도 클럽이라는 말을 한 동안 썼다. 학교의 소조모임에 ‘클럽활동’이라는 말을 붙였다. 사교클럽이라는 말도 아직 쓰지만,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나이트클럽’이 대표적이다. 이제 클럽하면 춤추는 데를 뜻하게 된 것이다.

그보다 작은 조직에는 서클(circle)이라는 말도 썼다. 그 뜻은 동그라미를 가리키는 것으로 무엇인가에 원을 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사람끼리 둘레 지움이다. 머리 좋은 사람의 둘레, 잘난 사람의 둘레, 힘센 사람의 둘레, 이렇게 말이다. ‘문학서클’이 좋은 예지만, 아직도 일상적으로 쓰는 말은 ‘폭력서클’이 대표적이다. 동그라미는 안과 밖을 나누기 때문에 이렇게 나쁘게 쓰이기도 한다. 그밖에 동그라미를 뜻하는 것에는 원형극장을 가리키는 서커스(circus)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다른 단어지만 순환을 말하는 사이클(cycle)도 있다.

우리말에서 특이하게 쓰이는 모임에 관련된 말도 있다. 사롱(salon)은 응접실을 가리키는 말로 귀족들의 사교모임으로 확대되어 쓰였다. ‘사롱문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롱은 문학이나 예술을 이끌던 장소였다. 프랑스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서 그 용어가 유럽전역으로 퍼졌다. 하다못해 러시아의 문호들이 모이던 장소도 사롱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용법은‘룸사롱’이 대표적이다. 사롱이 룸인데, 룸과 사롱이 합치면서 여자가 나오는 고급술집을 가리키게 되었다. 초창기에 사롱은 고급응접실이라는 의미가 있어 뷰티사롱, 헤어사롱처럼 양장점이나 미용원에 많이 쓰였지만 이제는 룸사롱에 거의 밀리고 있다. 하다못해 룸(room)이라는 말자체가 여자 나오는 술집을 가리키는 세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우리나라에 온다면 자기가 놀았던 공간이 그렇게 좋은 곳이었음을 알고는 놀라 자빠질 것 같다.

그러다 대학가에서 ‘동아리’라는 말이 쓰이면서 위의 외래어를 모두 평정해버렸다. 처음에는 말뜻 그대로 어색(語塞)했지만 이제는 어디서나 쓰인다. 우리말이 외국어를 누른 좋은 실례다. 컴퓨터 마우스(mouse)를 아직 ‘쥐’라고 하지 못하고 커서(cursor)를 ‘반디’라고 하지 못하지만, 동아리만큼은 어디서나 쓰인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사회로 확충된 경우다.

요즘은 ‘동호인’이라는 말도 쓴다. 동호(同好)라는 말은 조금은 신기한 조어지만 새로운 문화를 반영한다. 백성과 함께 즐겁겠다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이념처럼 전통적인 용어가 아니라 이 또한 어색하지만 세태가 동락보다는 동호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내 생각에는, 동락이 사회적인 방향을 추구한다면 동호는 좀 더 개인적인 쾌감에 치중되는 느낌을 준다.

이제는 모임이라는 말로 모든 것이 정리되는 듯하다. 동호인회도 동호인 모임이라고 할 정도로 ‘모인다’는 동사가 ‘모임’이라는 명사로 안착되고 있다. 우리의 정치사를 이끈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좋은 예다. 요즘은 ‘모임’이나 ‘사람(들)’에 ‘일동’(一同)이 밀리고 있다. 예전에는 전체주의적인 사고가 앞장을 섰다면 이제는 개인의 다양성이 더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OOO를 걱정하는 사람의 모임’ 같은 모임은 적을수록 좋은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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