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에는 병원이 없다
자연계에는 병원이 없다
  •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 승인 2014.02.11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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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낙춘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건축가>

‘완벽한 삶은 없다. 현실만족에 여유가 있을 뿐이다.’ 불가(佛家)에서의 말이다.

금세기 지구상에서 가장 위협적인 문제는 현대문명의 범람으로 인한 자연의 붕괴 그리고 멸종 현상이다. 자연의 재앙을 막기 위한 지구 살리기 운동은 물론 여러 환경단체가 자연 살리기에 적극 나서고는 있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현대문명은 자연의 말(言)을 앗아갔고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매연(煤煙)속으로 밀어냈다. 이에 따른 각종 산업공해로 인해 자연의 훼손은 물론 인간의 생명도 위협받게 되었다. 예견된 변혁이었다.

‘인간은 그 자신이 만든 기계문명으로 인하여 매연으로 가득한 불모지 속으로 들어갔다.

조경건축가(Landscape Archit ect), John O. Simonds 의 말이다.

지난 1898년 영국인인 에베네져 하워드(Ebenezer Howard)는 그의 저서 ‘내일의 전원도시(Garden City)’에서 사람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Where will they go?)라고 묻는다.

도시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농촌은 황폐화 되었고 도시에 솟아난 굴뚝에서 매연이 넘쳐나 각종 공해가 유발되어 신종전염병이 만연되었다. 당시 그는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자연의 피해로 인한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가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주었다. 또한 그로서는 가장 정확한 예언적이기도 하고 실현가능한 논리적 정의를 내렸으나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뜻으로 곡해되었고 때로는 몰이해(沒理解)로 인해 정반대의 악재로 활용되어지기도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AI(Highly Pathogenic Avien Influenza)가 발생했다. AI는 과학의 오용 및 생태계의 오염으로 인한 자연생태계순환체계의 악순환이 초래한 치유가 되지 않는 최악의 불치병으로 불리어 진다. 자연의 탓으로만 둘러댈 일도 아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무분별한 동물의 살생(殺生), 도륙(屠戮) 그리고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생태계의 수난이며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의 탓임도 간과할 수 없다. 인류의 과오임을 자인해야 된다.

산(生) 채로 살(殺) 처분 되어져 땅속에 매몰되는 닭, 오리 등. 처절한 상황을 지켜보는 가축 사육자의 탄식과 절규가 예삿일이 아님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닭, 오리만이 아니라 소, 돼지 등, 육류는 더 이상 먹지 말라”는 자연이 꺼내든 엄중한 레드 카드(red card)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 반론(反論)제기에 고통스럽다.

자연은 존경의 대상이어야 하며 절대적인 삶의 주체임을 주지하는 많은 예언적인 예시에 가까이 다가가야 된다. 자연과 함께하면 문명의 허구(虛構)를 볼 수 있다. 자연이 곧 인류의 보고(寶庫)임을 알아야 된다.

따뜻한 봄이 오면, 프랑스 파리 오르세(d‘Oray)미술관에 가서 밀레(Jean Prancois Millet)와 함께 이삭 줍는 사람들(Gleaners)을 보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서는 깊은 생각(The Thinker)에 잠겨 있는 로댕(Auguste Rodin)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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