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설날에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4.02.0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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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오막하게 들어앉은 고향 마을의 설날은 떡방아 찧는 소리가 요란했다. 절구대를 높이 치켜들어 절구통안의 찰떡을 향하여 내리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지는 정다운 옛 고향으로 마음의 여행을 떠난다.

애타게 기다리는 설날, 아주 가난한 집이라도 이날만은 빛을 내서라도 음식을 장만한다. 밤이 되면 엄마 품 떠났던 병아리처럼 객지나간 자식들은 설 쇠러 고향으로 온다. 텅 비웠던 건너방과 행랑방에 장작불 지펴 데워 놓고 오랜만에 만난 식구들과 친구들이 모여 이집 저집 방방이 웃음꽃을 피운다. 사람 사는 보람과 행복이 뭐 이런 게 아닌지.

떡국 한 그릇 먹고 나이 한살 더 먹었다고 신나 하던 또래 아이들은 슬슬 마을 어귀로 모인다. 동네에서 제일 어른 댁부터 시작하여 세배하러 다니는데 아침부터 집집마다 다 돌고나면 점심때가 된다. 세뱃돈 대신 떡과 과자를 한주머니씩 받아들고 좋아라했고 널뛰기, 화투, 윷놀이가 최고의 놀이였던 유년을 그려보며 잠시 마음을 정화시켰다. 요즘 설날은 집안 어른께는 당연 예의를 갖추겠지만 시골마을이라도 집집마다 세배하러 다니는 이는 없다. 시대가 변한만큼 시대에 맞추어 사는 삶이 세련되어졌지만 아쉽기만 하다.

설음식을 하느라 종종걸음을 치고 있을 때 큰아이 전화를 받았다. 설날은 여유가 없고 설 전날 세배 드리자는 효심이 모아져 삼년 째 일곱 아들친구들에게서 세배를 받는다. 차례음식을 하다말고 아이들 점심먹일 준비를 다 하고도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들이닥쳤다. 어떤 그럴싸한 말로 덕담을 해줄까 하는 고민도 잠시, 평소에 집에 자주 놀러왔던 아들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내 입장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집 설날 아침, 설거지 하는 동안 모두 조용하여 바라보니 우리 가족이 일제히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 하고 있었다. 놀라울 만큼 집중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스마트폰 게임에 열정이 넘치는 시기인가. 아직 젊다는 증거인가.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지만 모르는 척 했다.

설날은 옛날 그날이건만 어찌하여 옛날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지 모르겠다. 놀이문화도 그렇고 아마도 이젠 세배를 할 사람보다 세배를 받아야 할 사람이 많아서일까.

그래도 이번 설은 큰아이 친구들 덕분에 그 옛날의 고향 설 풍경을 한껏 느낄 수 있어 괜찮은 설을 보낸 것 같다.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또 나이 한두 살 잃어버린다고 누가 나무라겠는가.

이제는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한숨 쉴 일도 아니고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이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싶다. 해마다 설날이 오면 작심을 한다. 이번에는 우리가족에게 사행성오락게임을 멀리하기로 큰 맘 먹고 작심해보자고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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