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단순 먹거리 아냐 … 가족사랑·정 느끼는 시대 산물"
"떡, 단순 먹거리 아냐 … 가족사랑·정 느끼는 시대 산물"
  • 하성진 기자
  • 승인 2014.01.28 2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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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육거리시장 '신궁전떡집'
오전 4시부터 분주히 준비

가래떡 100 하루면 동나

손님 줄어도 명절은 명절

흥 띄우려 노래·춤도 선사

어두컴컴한 새벽녘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방앗간 쌀 찧는 소리는 설이 며칠 남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기계에서 뽑혀 나오는 떡 가락에선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졸린 눈을 비비며 할머니를 따라나선 꼬마는 어느새 떡 한가락을 조청에 찍어 ‘야금야금’ 먹고 있다. 가래떡을 광주리에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오는 할머니의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 가볍다. 자식들과 옹기종기 둘러앉아 떡국 한 그릇을 먹을 생각에 흥이 절로 난다.

설을 앞둔 시골 마을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세월이 흘러 핵가족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런 ‘행복한 풍경’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설이 다가오면 어느새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추억이 떠올라 엷은 미소를 짓게 한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듯 설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떡국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보니 가래떡 한 봉지를 사려는 사람들로 재래시장은 발 디딜 틈 없다.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 내 ‘신궁전떡집’사장 우재창(51·사진)·남봉자씨(48·여) 부부는 올해로 22년째 떡을 만들어 오고 있다. 떡집 사장이 체감하는 설 풍속도는 어떨까

“설 하면 떡국이죠. 한국에선 떡국 문화가 없어지지는 않을 거에요.”

매년 설이 되면 떡집은 쌀을 빻고 반죽을 해 가래떡을 뽑아내느라 분주하다.

명절을 앞두고 평소보다 두 배가량 많은 쌀 60가마 분량의 가래떡을 뽑아내야 하다 보니 우씨 부부는 기존 직원 8명의 손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이때만큼은 아르바이트 6명을 더 부려야 한다.

우씨 가게는 다른 떡집에 비해 떡 종류가 많기로 소문났다. 가래떡은 물론 인절미, 시루떡, 꿀떡까지 무려 30여종에 달한다. 직접 빻은 엿기름가루로 만든 식혜도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28일 오전 4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여 6시간 후 뽑은 가래떡만 해도 100㎏. 비닐봉지에 담아 자판에 올려놓으면 오후 8시도 안 돼 동난다.

편리함을 뒤로 한 채 손수레에 쌀을 실어 가져와 직접 가래떡을 뽑아가는 손님도 적잖다. 가게에서 만난 민순자씨(59·여)는 “먹을 만큼만 사서 한 두 끼 떡국을 끓여 먹어도 되지만, 명절 지내러 온 자식들이 귀가할 때 담아주려고 떡을 직접 뽑았다”고 전했다.

“매년 찾아오는 명절이지만, 체감이 다른 건 사실이에요.”

설에는 ‘떡국 한 그릇 먹어야 한 살을 먹는다’고 해 첨세병(添歲餠)이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설이면 으레 가래떡을 사느라 떡집 앞에는 길게 장사진을 치게 마련이었다.

우씨 부부가 가게 문을 처음 열었을 때도 떡집 앞에서 손님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떡을 사가는 양도 지금보다 훨씬 많다. 80㎏ 쌀 한 가마를 떡으로 만들어 가는 손님도 부지기수였다. 떡집 안 분위기도 요즘과는 사뭇 달랐다. 떡을 사러 온 손님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단순한 가게가 아닌 인정이 넘치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근래 들어선 서운함이 들 만큼 정겨움이 없어졌다. 지금의 명절은 외로움이 더 많이 느껴진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가게에 들러 떡을 고르던 모습도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가게를 찾는 손님 대부분이 연령층이 높은 어머니나 할머니들이다. 간혹 젊은 부부가 찾기는 하지만 5000원짜리 가래떡 한 봉지를 사가는 게 전부다. 떡이 만들어질 때까지 가게에 앉아 기다리는 손님도 거의 없다.

우씨는 “명절을 앞두고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지만, 해마다 손님이 줄어들고 있다”며 “젊은 층들이 떡집에서 떡을 만들어 갖고 가기보다는 대형마트 등에서 편리하게 사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갈수록 명절 분위기가 덜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명절은 명절이죠.”

우씨 부부는 육거리시장에서만 15년간 떡집을 운영해왔다. 몇 년 전만 해도 정겨운 명절 냄새가 물씬 풍겼다.

손님들이 대형마트보다는 재래시장을 더 자주 찾았고, 손님과 500원을 놓고 가격흥정을 하는 일도 잦았다. 소박하고 순수함이 묻어나왔다고 한다.

우씨는 손님들이 흥겨운 명절이 되게 하고자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설과 관련된 음악을 크게 튼다. 가끔은 자판에 서서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가벼운 춤도 춘다. 엄마 손을 잡고 있는 꼬마 손님이 보이면 여지없이 꿀떡을 선물한다.

우씨는 손님들이 떡집에 들러 잊고 있던 명절의 설렘을 잠시라도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한다.

그는 “떡이 단순한 먹거리보다는 가족 간 사랑과 이웃의 정을 느끼게 해주는 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며 “세상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져도 구수한 떡처럼 마음만큼은 훈훈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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