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핀 꽃
겨울에 핀 꽃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4.01.2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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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창밖엔 눈이 내린다.

추위도 아랑곳없이 석곡과 키르탄사스가 거실의 한 곳에 곱게 피었다. 겨울에 핀 꽃을 보니 이른 봄을 맞이한 것처럼 마음이 설렌다. 그것은 아마 내 손길이 가득 담겨 있기에 더 사랑스러운가 보다. 그들은 은은한 향기와 더불어 고운 눈웃음으로 나를 반긴다.

거실의 한 모퉁이에서 가족들과 더불어 겨울을 보내는 꽃들이 내겐 자식처럼 애틋하다. 가끔 사진도 찍어주고 스마트폰에 간직해 귀여운 손녀들처럼 사람들에게 자랑도 한다. 은연중 내 분신이 된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맑은 물과 고운 눈길, 그리고 부지런한 손길을 주었을 뿐인데 이렇게 고운 꽃을 피우니 얼마나 기특한가.

12월의 된서리가 내릴 때 밖에서 집안으로 들여 놓았다. 2층의 사용하지 않는 주방 공간은 꽃들이 휴면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꽃은 거의 그곳에 있는데 꽃대가 올라온 몇 분을 아래층 거실로 가져왔다.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창가 옆에 두었다.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다가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며 어느덧 봉오릴 열었다. 온실이 있으면 좋으련만. 주택 이곳저곳을 헤매며 꽃을 피우자니 얼마나 그 삶이 고달팠을까.

나름대로 주택에서 여름 햇빛에 강하게 자라 겨울이 되어도 꿋꿋하게 잘 견디어내고 있다. 꽃과 난 실과 바늘처럼 함께 다닌다. 피아노를 치고 싶을 땐 피아노 위에, 집안일을 하다 안방에서 쉴 땐 안방으로, 식사할 땐 식탁으로 어린아이처럼 데리고 다닌다. 마치 맹모삼천지교처럼. 남편은 별 관심 없이 내 모습을 그냥 멍하니 바라본다. 남들이 남편을 그렇게 극진히 섬기면 열녀라고 하겠지만.

무명 소심(素心) 석곡이 맑은 모습으로 듬뿍 피었다. 아주 적은 몇 촉되지 않았던 꽃이었는데 10여 년을 넘게 키우다 보니 제법 보기 좋은 포기가 되었다. 딱딱한 마사에 뿌리를 내리고 하얀 화분에서 학처럼 핀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눈부시다. 참 사랑스럽다. 그렇게 꽃을 피우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멀리 바다 건너로 외출을 한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갈증이 나서 시들지 않게 내 자식처럼 키운 기나긴 세월이었다. 이젠 그 긴 세월이 차곡차곡 쌓여 조금씩 기쁨을 주고 있다.

처음엔 야속하게 꽃을 피우지 않아 애태움도 많았고 조급한 마음에 꽃들을 많이 힘들게도 했다. 그 기나긴 기다림이 고운 꽃으로 내게 보답하고 있다. 눈길 돌리는 곳마다 분홍빛 흰빛, 연분홍빛 꽃들이 피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모습을 보는 맘이 넉넉해진다. 많이 가진 것 없어도 마음의 여유를 누린다. 말없이 살아서 함께 소통하니 얼마나 즐거운가.

나와 긴 세월을 같이했던 동료에게 소식을 전하게 되면 그 꽃 사진을 덤으로 보낸다. 함께 보냈던 시간을 돌아보고 그리움으로 지난 시절을 마음에서 바라볼 수 있기에. 세상이 삭막하다고 삶도 그렇게 살수는 없지 않은가. 밍크코트가 없고 보석 반지를 손가락에 끼지 않았어도 마음을 넉넉하게 해 주는 꽃이 내 곁에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

소심 석곡을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바라본다. 우리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받아와 기분 좋았던 때처럼 마음에 새 힘이 솟는다. 무엇이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면 못 이룰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변함없는 나날의 지루함을 깨끗이 씻어주는 겨울에 핀 꽃으로 마음에 새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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