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9.2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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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원에서
정 상 옥 <수필가>

하루를 접는 밤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정원 앞에 와 앉는다.

작고 비좁은 공간이지만 바뀌는 계절을 제일 먼저 느끼게 하는 곳이요, 거짓 없이 주는 사랑에 배반하지 않고 반드시 화답하는 여린 생명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작은 정원은 나의 정신을 정화시키는 곳이며, 나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작은 정원에는 푸른 물결로 생동감이 넘쳐나고 저마다의 건강함으로 사랑을 주는 내 마음에 화답을 한다. 고무나무의 널따란 잎사귀를 닦아주면 파랗게 물오른 청년의 기백처럼 싱싱함이 전해오는 것 같아 힘이 넘쳐나고, 섬섬옥수 여인의 부드러운 손길 같은 실 난은 금방이라도 하얀 꽃을 부끄러운 듯이 피우며 은은한 향기를 살포시 안겨 줄 것만 같다.

가끔 사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고 마음마저 가라앉는 날이면 더 많은 시간들을 화초 앞에서 보내게 된다. 하얀 수건으로 잎에 앉은 먼지를 닦아내며 탐욕과 시기와 허욕으로 얼룩진 내 마음의 때도 정갈하게 닦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이름도 알 수 없는 풀한 포기가 고무나무 화분에서 삐죽이 싹을 내밀고 있다. 얼마 전 퇴비를 사다 부었더니 그 속에서 자라 나온 것 같다. 잡초라 치부해 버리고 뽑아내려하니 그 틈바구니에서도 어느새 보랏빛 작은 꽃봉오리를 맺고 있었다. 차마 뽑지 못하고 꽃이 피고 질 때까지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림의 아량을 베풀자며 고무나무에게 가만히 속삭였다.

어느 곳에 있다가 이곳까지 왔을까 있어야 할 곳에 머물지 못하고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묻혀 있는 더부살이 삶이 어디 저 이름모를 잡초뿐이랴.

어떤 것이 진실임을 알면서도 그 진실 앞에서 얄팍한 계산으로 저울질하며 아니 가야할 길이었음에도 약간의 이익 앞에서 서슴없이 발을 내디디며 살고 있지 않는가.

양심을 수없이 배반하며 비열하게 사는 인간의 삶이 화분에 기생하는 저 잡초 앞에서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는지. 생명을 이어가려 안간힘을 쓰는 이름모를 가녀린 풀꽃은 몇 날 활짝 피었다가 지고 말지만, 시기하고 배반하며 남을 밟고 올라선 인간의 욕망은 쉽게 꺼질 줄을 모른다. 서로 아끼고 배려할 줄 아는 너그러운 마음도, 죄를 부끄러워하며 깨우치는 자책도 한번 피어난 욕망 앞에서는 너무도 쉽게 정복될 때가 있다.

진정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인색하지 않으며, 따뜻하고 진실 된 마음으로 선뜻 손을 내밀어 잡아준 적이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자기 모습 드러내지 않고 사회의 시린 곳을 어루만지며 어두운 곳 밝혀 주는 촛불 같은 삶을 살아본 날이 내게 몇 날이나 있는지, 고해 실에서 내 지은 죄 묵상할 때처럼 깨끗하고 정직하게 간절히 살아온 날들이 몇 날이 될까 돌아보니 잡초 앞에선 내 모습이 더 없이 부끄러워졌다.

잎사귀에 내려앉은 얼룩진 먼지를 닦아내며 나에게 쌓인 나태와 허욕의 두께에 눌려 버거워 하던 삶의 무게도 성찰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씻어버리리라.

정성과 진실한 사랑의 손길로 어루만져 줄때 꺼져가는 생명도 살릴 수 있다는 교훈을 꽃을 가꾸며 얻었기에…. 모진 겨울바람과 역경을 이겨낸 화초의 꽃이 더 탐스럽고 은은한 향내를 오래도록 멀리 전하고 있음을 또 한 번 느껴보는 날이었다.

하찮은 잡초 한포기 앞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인격의 허기를 느끼는 날에 나는 밤이 이슥하도록 이들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정원을 서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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