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님이시다
공자님이시다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4.01.2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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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운동화 끈을 조여맸다. 그리고 털모자를 눌러썼다. 바람이 칼칼하다. 좀처럼 시간내기 힘든 딸아이가 이 엄동설한에 땀을 흘리고 싶다며 산에 가자 하여 함께 나섰다.

겨울 칠보산을 오르는 일은 처음부터 만만하지 않았다. 겨우내 내린 눈은 얼어붙어 있고 그 눈이 녹았다 얼었다 하면서 흙이 살짝 덮인 얼음길이었다. 경치를 즐기거나 손을 잡고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걷는데만 집중해야 한다. 조심조심 신경을 바짝 쓰고 땅만 보고 걸었다. 아이는 말없이 앞서 한참을 올라갔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나는 지금 아이가 목적지만 향해 숨차게 오르는 것을 잠시 쉬었다 가자며 손을 잡았다. 그렇게 오르기만 해서 어쩌려고 하나 걱정스러워 물을 마시게 했다. 잠시 아래로 보이는 멋진 풍경을 보라고 권했다. 숨을 고르며 올라온 길을 돌아보는 딸아이의 얼굴이 심란했다. 힘든 내색은 하지 않지만 어미인 내가 그 마음 왜 모르랴. 젊은이들만이 겪어야 하는 고민을, 욕심이 많으니 시련도 겪어야 하고 그 시련을 이겨내려는 고통도 있을 게다. 딸아이도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지 혹독하게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고 싶은 것 같다. 사회생활이 그리 녹록하지 않을 게다. 얼음 위를 걷는 것과 같으리라. 그저 잘 이겨내길 바랄 뿐이다.

산악회에서 온 사람들인지 여럿이 웃고 떠들며 산을 오르는 사이 여기저기서 쿵쿵 소리가 나면서 비명이 들린다. 우리의 삶도 조금 여유있다 싶어 건방을 떨면 여지없이 넘어진다. 봄 산이라고 쉬울까, 여름 산이라고 쉬울까, 산을 오르는 일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비를 넘겨야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살아가는 일과 같아서 인내가 필요하다. 힘들다고 오르기를 포기하면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없고 그저 앞만 보고 가면 정상에는 빨리 오를 수 있겠지만 경치를 놓치기 쉽다. 적당히 그때그때 경험하고 어느 한계점에서 힘이 붙었을 때 온 힘을 다해 한 단계 한 계단 오르는 일도 기분 좋은 일이다.

산이 주는 느낌은 계절마다 다르다. 겨울산은 속을 다 내보이고 침묵이다. 환상적인 설경 아래 겨울의 낭만과 아름다운 풍경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적하면서도 운치 있는 색다른 낭만을 느끼게 한다. 설원의 장쾌한 눈꽃을 함께 볼 수 있는 겨울산, 하지만 방심하면 되돌릴 수 없는 위험을 지니고 있다. 우리도 산을 오르며 몇 번은 넘어질 뻔했다.

겨울산은 말없이 서 있지만 우리는 그 앞에서 벌벌 긴다. 서슬 퍼렇게 호통을 치거나 눈을 부라리지 않아도 알아서 긴다.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 설산의 아름다움에 반하지만 쉽게 범하지 못한다. 그 앞에서 겸손해진다. 겸손해야 한다. 조용히 성찰하고 정숙하라 말하지 않아도 무릎 꿇어진다.

겨울산은 공자님이시다. 말로써 가르치려 하지 않고 다만 다녀가는 것으로 세상 이치를 깨닫게 하신다. 세상에는 서둘러서 되는 일이 있고, 욕심을 내서 되는 일이 있고, 때를 기다려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 함부로 행동해서는 몸과 마음을 다칠 수 있다는 것 오늘의 가르침이었다. 겨울산의 위대한 힘을 보았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집에 오면 따스한 밥 한 끼 해 먹이는 일, 그리고 자식들이 하는 일을 지켜봐 주는 것이 내 역할의 전부인 것 같다. 서너시간 땀을 흘리고 내려온 딸아이는 한결 편안해보였다. 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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