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친교(不必親交), 굳이 직접 하시렵니까
불필친교(不必親交), 굳이 직접 하시렵니까
  • 양철기 <충북교육청 장학사·박사>
  • 승인 2014.01.20 1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충북교육청 장학사·박사>

삼국지의 영웅 제갈공명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유비와 그의 아들 유선에게 충성을 다한 인물, 불세출의 전략가, 학창의(鶴氅 衣·학의 깃털로 짠 듯한 흰옷)를 걸친 신선 같은 사람…. 그러나 제갈공명은 실로 비범한 인물이었으나 심리적으로는 심각한 나르시시스트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조직의 최고지도자(CEO)가 모든 일을 직접 챙겨선 안 된다는 뜻으로 쓰이는 ‘불필친교(不必親交)’는 제갈공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촉나라 승상(국무총리) 제갈공명이 직접 하급간부가 관장하는 장부를 조사한 일이 있다(親校簿書). 하급직인 주부 양과(楊顆)가 정색을 하고 건의했다. “통치에는 체통이 있습니다. 상하관계라도 고유권한을 침범해선 안 됩니다. 사내종은 밭 갈고 계집종은 밥 짓고, 닭은 새벽을 알리고 개는 도둑을 지키는 이치입니다. 이 모든 일을 주인 혼자서 할 수 없는 노릇이듯 어찌 지체 높으신 군사께서 이리하십니까?” 공명이 부하에게 예를 갖춰 물러나왔다.

제갈공명의 성격유형은 직관사고형(INTJ·Introversion, iNtution, Thinking, Judgement)으로 이론적으로 뛰어나고 말과 글의 달인이며 자연과학, 이공계 쪽에도 관심과 재능이 많은 전략가였다.

이런 성격유형은 자신의 신념을 실현할 때까지 기성 권위나 반대 등에 개의치 않고 완강하게 밀어붙이는 강한 힘과 의지가 있으며 자신과 타인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무척 높으며 완벽주의적이고 자기 비판적이다. 보통 심리적으로 건강한 INTJ는 난세를 평정할 만한 재목이 될 수 있으나 건강하지 못한 INTJ는 독선적이고 감정능력이 미숙하며 일 중독에 취약하며 장기적으로는 조직에 악영향을 끼치는 약점이 있다.

당시 제갈공명과 쌍벽을 이루고 있던 위나라의 사마의는 “제갈량은 자기 재주만 믿고 하늘의 뜻을 거슬러 움직이고 있으니 이는 곧 스스로 패망의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라고 했다.

보통 사고 실천형(TJ)은 일 중독에 취약한 편인데 제갈공명은 늘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잠자리에 들고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 처리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더 심한 일 중독에 빠졌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사망했다.

무능하고 감정 기복이 심해 중년까지 이곳저곳을 떠돌며 식객 노릇이나 하던 유비가 촉나라 황제가 된 것은 제갈공명을 얻은데서부터라는데는 이의가 없다. 다만, 걸출한 스타플레이어(제갈공명)가 자기 과시욕이나 대인관계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그가 속한 팀은 점점 허약해진다. 유비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하고 지방정권으로 끝난 것은 공명 한 사람에게 너무 의존해 그런지 모른다. 공명이 죽은 뒤 촉나라가 삼국 중 가장 먼저 망하게 된 것은 결코 그와 무관하지 않다.

한문제(漢文帝)가 좌승상 진평(陳平)에게 형사 사건의 건수와 연간 조세 수입의 규모에 대해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주관하는 신하가 따로 있습니다. 형사 사건은 정위(庭慰)의 담당이고, 세금은 치속내사(治粟內史)가 잘 압니다” 황제는 불쾌했다. “그럼 승상은 무슨 일을 하는가?” “승상은 천자를 보좌하고 조화를 살피며, 사방을 어루만지고, 관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을 합니다. 나머지는 책임 맡은 자가 알아서 합니다. 반대로 하면 천하가 어지러워집니다” 황제가 승복했다.

지도자는 큰 그림을 그리고, 비전을 세우고, 조직원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마음껏 일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믿고 일을 맡기되 결과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거기에 걸맞은 예우를 하면 된다.

제갈공명이 부하에게 예를 갖추고 나와 자신의 성격적인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고쳐나갔더라면 중국의 역사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