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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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4.01.1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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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뭔가 다르리라는 기대감 때문인지 만나는 모두가 환한 표정이다. 덕담을 주고받는가 하면 언짢아했던 사람도 서로 각자의 일이 잘 되기를 빌어주는 분위기다.

갑오년 새해의 커튼을 걷어올리고 싶은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연 이태 그런 설렘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니 딸애의 입시 때문이다. 작년에 재수를 해서 지금 정시입시에 응시해 합격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다. 시험도 썩 잘 본 게 아니라서 입시결과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새해를 맞는 감흥이나 설계는 뒷전이고 마음은 헝클어진 실뭉치마냥 어수선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런 기분으로 지낼 수는 없었다. 기분전환도 할 겸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토정비결을 열어보다가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이전에는 부담 없이 확인해 보곤 했는데 운세가 좋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선뜻 클릭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오늘 우연히 핸드폰 카카오톡에 사주를 보는 분의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아는 언니가 사주를 잘 보는 사람이라고 번호를 일러준 뒤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었는데 ‘미래가 궁금하면 오라’는 상태메시지가 마음을 끌었다. 망설이다가 금요일 밤에 카톡을 보냈다. 혹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예약 가능한지를 문의했고 분명 읽은 흔적이 보이는데 아무런 답이 없다. 답답한 건 물론이고 괜한 짓 했다는 생각에 가뜩이나 복잡한 머리가 더 어수선했다.

바로 그날 밤 한 방송국에서 신년 점집을 취재한 방송을 보았다.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가 5~6시간 기다린 뒤 신년 운세를 보는 내용이었다. 수도권에 있는 다섯 집을 동시에 카메라에 담았는데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그제야 아~~ 저렇게 많으니 내 카톡은 무시를 당했구나 하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점집은 보통 1월과 2월에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앞일이 궁금한 사람들이 운세를 보러 찾아오기 때문이다. 점을 보러 온 사람에게 까닭을 물으니 몸이 아프면 감기약 처방을 받듯이 올 한해 좋지 않다는 것을 피하면 신년 운세가 우산 역할이 될 거라는 기대로 찾아온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해 손을 맞잡는 기도 같은 것으로 생각해 보니 믿기지 않는 중에도 수긍이 간다.

내 마음을 들킨 기분이었다. 나 역시 작은 아이가 대학에 응시를 하고부터 구도하는 심정으로 보냈었다. 특별히 격식을 갖춘 것은 아니고 손을 맞잡고 마음속으로 합격을 기원해 왔다. 간절히 기도하면서 경건히 보낼 수 있었고 그걸 계기로 나약한 인간의 속내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종교는 이를테면 나약한 우리의 바람막이다. 모든 게 임의롭지 않고 그래서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고 달래는 격이고 나도 위로가 필요했었나 보다. 운세를 통해 작은아이가 대학에 합격한다는 말을 들었을지언정 기도는 계속 이어지고 사뭇 불안해 했을 것이다. 어쩌면 ‘올 한 해 운이 너무 좋을테니 걱정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걸까. 이제는 아이도 나도 웬만치 안정된 상태다. 나는 곧 일상으로 돌아오겠지만 딸아이는 아직 어린만큼 특별한 방법으로 상처를 다독여야 할 것 같다.

오늘 모처럼 기분이 상쾌한 게 깜깜한 터널에 갇혀 있다가 볕을 보는 느낌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당연히 여길 줄 알면 지혜로운 사람이다. 매사 잘 풀리다보면 유한의 존재임을 깨닫고 숙이는 마음이 깃들지 못한다. 잘 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과정이라고 최면을 거는 삶이 아름답다. 점집을 찾아가고 사주를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보다는 꿋꿋이 대처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면역력이 강하면 병이 침투하지 못하듯 강한 의지 앞에 시련 또한 문제될 수가 없을 테니까. 올 한 해 다 잘 될 것이라 체면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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