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당신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새해 첫날 당신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4.01.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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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새해 첫날 당신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선배가 보낸 새해 첫인사다. 선배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손님은 먼지란다. 집안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떨어내며 먼지도 내 삶의 일부라는 생각에 정성스레 갈무리 했다는 메시지. 무엇을 보았냐는 낯선 인사에 까닭 없이 긴장했던 마음에 가만히 온기가 스며들었다.

‘새해 첫날 나는 제일 먼저 무엇을 보았더라?’

메시지에 답을 쓰려다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난다.

그 첫날. 방안 가득 환하게 퍼진 빛에 떠밀릴 때까지 우리 네 식구는 애벌레처럼 꿈틀대다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곤 계면쩍은 웃음을 흘렸다. 남들은 새 마음 다지느라 부지런 떠는 날 나란히 한 방에 누워 늦잠을 잤으니 어찌 각자 마음속으로 부끄럽지 않겠는가. 계사년 마지막 날, 늦은 밤까지 영화를 보고 맥주 한잔 하며 소박한 인사를 나누다 함께 잠이 든 모양이다. 그 첫 마주침, 세수도 안한 식구들의 민낯이 내게는 선물처럼 따스했다. 집을 떠나 맞이하던 기억과는 색다른 고요함과 여유로움이 고마웠다.

오후엔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옷장을 정리하고 책을 정리했다. 창을 여니 싸늘하고 청아한 기운이 상쾌한데 베란다 문 앞에 달아둔 풍경에서는 댕강 댕강 맑은 소리가 바람을 탄다. 특별히 소리 내어 한 약속은 없지만 나는 안다. 맑은 풍경 소리가 가슴 결에 젖어들어 각자 새해의 문을 열고 있음을......가끔은 이렇게 떠나지 않고 제자리에서 내 안을 갈무리 하며 새해를 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누군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

늘 가족여행을 즐기는 친구도 올해 첫날은 집안을 정리하며 보냈단다. 때가 되면 자연스레 떠나던 해맞이 여행. 바다위로 둥실 떠오르던 불덩어리 앞에서 막연히 느끼던 경외감과 설렘, 어두운 숲을 거슬러 올라가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해를 맞이하던 희열. 어디든 해를 향해 똘똘 뭉쳐 달려가던 그 열정은 어디로 갔을까? 친구는 조금쯤은 쓸쓸하다고, 가족의 경계가 허물어진 느낌이라고 얘기 한다. 친구의 긴 문자에 나는 아직 답을 못했다.

가족의 결속력이 느슨해진 탓일까? 뜨겁게 품었던 꿈이 희미해진 것일까? 아니면 새해를 맞는 방법도 세월에 따라 달라진 걸까? 나도 아이들이 어릴 땐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새해가 되면 꼭 치러야만 되는 의례처럼 길을 떠났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은 새해가 되면 나름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맞이할 준비를 하고 내면을 성찰한다. 아이들이 한창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는 젊음의 한가운데 서 있는 시간, 모두 모여 새해를 맞는 것도 나름 가족을 위한 배려와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함께 할 수 있음만으로도 감사하다.

나 자신도 마음으로 기원하는 것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무엇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원하기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게 해달라고 채움보다 비움에 대한 기원이 늘었다. 그러다 보니 한편으론 새날을 맞는 시간들이 점점 소박해져가는 건 사실이다.

그 친구에게 새해 첫날 무엇을 처음 보았냐고 묻는다면 쓸쓸함이 덜해질까?

새해 첫날 처음 본 것이 해가 아니면 어떤가? 얼굴 마주 할 수 있는 누군가 곁에 있다면 행복하지 아니한가. 가족이든 이웃이든 그가 누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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