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설
강설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4.01.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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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사람들이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대부분 눈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눈의 어떤 면이 사람을 혹하게 하는 것일까 순백의 순결함이 주는 매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무차별적인 순응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매력은 눈이 만들어주는 고즈넉한 격리감일 것이다. 평소에 오가던 산야라도 눈이 내리고 나면, 그 느낌이 전혀 다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평범하고 익숙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사람의 왕래도 모두 끊기고, 전혀 낯설고 적막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오직 눈뿐일 것이다. 당(唐)의 문인 유종원(柳宗元)은 눈 내린 강(江)의 적막함과 격리감을 짧은 시로 그려내고 있다.

◈ 강설(江雪)

千山鳥飛絶,(천산조비절), 온 산에 새는 날지 않고

萬徑人蹤滅.(만경인종멸). 모든 길엔 사람 발길 끊어졌다

孤舟蓑笠翁,(고주사립옹), 외로운 배에 삿갓 쓴 노인

獨釣寒江雪.(독조한강설). 눈 내려 차가운 강에 홀로 낚시질 한다

 

※ 평소 같으면 산이란 산에는 모두 새들이 날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세상의 길이란 길에는 모두 사람들이 왕래할 터였다. 그러나 이러한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산에는 새가 날지 않고 길에는 사람의 발자취조차도 사라졌다. 이처럼 전혀 다른 세상이 된 것은 바로 눈 때문이다. 언제 어디에 얼마만큼 눈이 왔는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눈이 왔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바꿀 만큼 말이다.

시인이 무슨 연유로 강(江) 가운데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지도 알 필요가 없다. 시인은 자신의 문제를 풀기 위해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는 자신을 잊기 위해서도 거기에 있지는 않았다. 눈 내린 뒤 세상의 달라진 모습을 전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기에 있을 뿐이었다. 원래 강(江)은 고깃배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배 한 척이 달랑 있을 뿐이라서, 시인은 이것을 외로운 배(孤舟)라 한 것이다. 이 또한 눈 내린 뒤에 바뀐 장면의 하나이지만, 본디는 이 배마저도 없어야 더 극적인 변화의 취지에 맞을지도 모른다. 관찰자의 존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것의 존재감을 최소화한 표현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 배에 앉아 있는 사람은 어떠한 인위적 꾸밈이나 욕망과 거리가 먼, 차라리 자연의 일부라고 보아야 할 상태로 묘사되고 있다.

사립(蓑笠)은 띠나 짚, 대나무로 엮어 만든 우장(雨裝)으로 그 자체가 자연의 일부이다. 그리고 사람도 젊은 사람이 아니고 늙은 사람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렇게 해야 자연에 더 가까워 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립을 쓴 노인은 인간적 측면이 아닌, 자연의 일부로 묘사된 것이다. 다시 말해 시 속의 인물은 사람이 아니라 눈 내린 세상의 한 풍경이다. 이 인물의 행위 또한 전혀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홀로 낚시를 하는 모습에서 세속의 욕망이나 번다함을 찾을 수 없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세상은 단박에 다른 세상이 되었다. 인간이 아등바등 매달리던 일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눈 세상에서 느끼는 세속으로부터의 격리감은 고독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불안과 서글픔 대신 평안과 환희가 그 느낌의 본질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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