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헤어짐에 대하여
만남과 헤어짐에 대하여
  • 김희숙 <수필가>
  • 승인 2014.01.0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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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

현대인들은 쉬운 만남을 한다. 이별 또한 너무나 가벼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 하나하나는 인연에 기인한다. 인연이란 그림자와도 같은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늘 따라다니는 그림자. 그림자는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긴 만남도 있고, 스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린 항상 누군가를 만난다. 만남도, 헤어짐도, 좀더 신중하게 하자고 다짐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가슴에 화석으로 남는 그리움이 되자고….

오늘 또 한 번의 이별을 했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나와 인연이 맺어졌을 28명의 아이들과 이별식을 했다. 해마다 이월이면 하는 이별인데, 해마다 가슴이 서걱이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 시간이 넘는 이별식을 참 잘도 견디는 대견한 녀석!  

내가 그 아이와 만난건 날실과 씨실의 묘한 교차점 이었을 것이다. 유난히 체구가 작고 눈빛이 또랑또랑 했던 그 아이. 일년내내 난 그 아이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점심을 먹을 때도 항상 내 옆자리에 두었고, 수업 시간에도 내 시야에 그 아이를 가두어 두었다. 연필로 종이에 이유없이 자디잔 구멍을 내 놓던 녀석, 무엇이든 부러뜨리기를 좋아하던 아이는 친구들의 크레파스를 모조리 부수어 버리기도 했었다. 원숭이가 나무를 타듯 정글짐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던 그 아이를 보며 간이 조마조마 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창틀에 올라가 창밖으로 종이비행기를 날리던 그 아이를 보며 아찔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현장학습을 가던 날, 들판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집어 들어 아이들을 향해 휘두르던 꼬마 악동, 잠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않던 녀석이 오늘은 헤어짐이라는 묘한 분위기를 읽은 것일까 너무나 잘 견디고 있었다.  졸업장을 나누어 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녀석이 내게로 달려와 안겼다. 형언하기 힘든 전율이 온몸으로 퍼져 올랐다. 지난 일년을 회상해 본다. 내가 얼마나 이 아이에게 정말로 진심을 다했는지, 얼마나 이아이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았는지, 이 아이 가슴속에 담겨 있을 아픔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는지, 이 아이를 분노하게 만들었던 그 무엇을 정면으로 직시 했었는지…. 왠지 미안함과 후회로 등줄기에 얼음덩이 하나가 또르르 굴려 떨어지는 느낌이다. 

아이들을 보내고 텅빈 교실에서 생각한다. 올해에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그 사람의 내면의 아픔까지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계산하지 않는 정말이지 순수한 바보가 되어야겠다고. 내 모든 것을 주고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리하여 언제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고향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같은 참 스승이 되어야겠다고.

창밖엔 아직 이월의 겨울 바람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마치 또 한번의 이별에 아파하는 내 마음처럼.

※ 김희숙 수필가는

월간문예사조로 수필 등단. 현재 교육공무원으로 비봉유치원에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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