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에 잠 못 들고
제야에 잠 못 들고
  • 충청타임즈
  • 승인 2013.12.3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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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제야(除夜)는 보통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 밤을 일컽는 말이다. 요즘은 양력으로 해를 보내기 때문에 양력 말일 밤을 제야(除夜)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오는 특별함 때문에 사람들이 제야(除夜)에 느끼는 감회(感懷)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고향 집에서 멀리 떨어져서, 그리고 나이 들어서 맞는 제야(除夜)는 무척 외롭고 쓸쓸하기 마련이다. 당(唐)의 시인 고적(高適)은 이러한 제야(除夜)의 감회를 시로 읊고 있다.

◈ 제야음(除夜吟)

旅館寒燈獨不眠(여관한등독불면) : 여관 차가운 등불 아래 홀로 잠 못 이루고

客心何事轉凄然(객심하사전처연) : 나그네 속마음 무슨 일로 이리도 처절한가

故鄕今夜思千里(고향금야사천리) : 고향서도 오늘밤 먼 곳의 나를 생각하리니

霜빈明朝又一年(상빈명조우일년) : 서리 같은 흰 머리 내일 아침이면 또 한 해로구나

 

※ 한 해가 마지막을 고하는 날 밤(除夜)에 시인은 고향을 떠나 객지의 여관(旅館)에 머물고 잇다. 무슨 이유로 고향을 떠났으며, 여관에는 얼마나 머물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시인이 가족도 친구도 없이 홀로 타향에서 한 해의 마지막 밤을 맞고 있다. 기나긴 겨울밤은 그 자체로 시인에게는 잠들 수 없는 고통이다. 그래서 등불을 밝혀 놓았지만, 그 불빛마저 차갑게 느껴질 뿐이다. 여기에 혼자라는 외로움에 시인은 도저히 잠들지 못한다.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차가움의 제야(除夜) 이미지가 이보다 선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시인의 마음은 점차 슬프고 쓸슬해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고향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여느 고향 생각하고는 다르다.

시인 자신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리는 대신, 거꾸로 고향의 가족 친지들이 천리 타향에 떨어져 있는 시인을 그리워 하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고향을 바라보니 보이는 모습이 자신을 그리워 하는 가족 친지의 모습이라는 발상은 참으로 참신하고 기발하다. 이는 왕유(王維)가 그의 시 ‘구월구일억산동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에서 형제들이 고향에 모여 높은 곳에 올라 산수유 열매 가지를 머리에 꽂는 중양절 행사를 치르는데 자신의 모습만 빠진 것(遙知兄弟登高處,遍揷茱萸少一人)을 그려낸 것과 흡사하다. 고향 생각에 마음이 한껏 처연(凄然)해진 시인은 어느새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더욱 울적해지고, 또한 몇 시간 뒤에 올 아침이면 또 한 해가 시작된다는 사실에 새삼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느끼게 된다.

속절없이 지나기는 어느 날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한 해의 마지막 날, 그것도 새해를 불과 몇 시간 앞둔 밤에는 시간이 흐름이 똑똑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제야(除夜)는 특별하다. 고향을 떠나 타지의 여관에서 맞는 제야(除夜)는 더욱 특별할 것이다. 인생무상의 허무함과 쓸쓸함에 잠 못 들기 일쑤지만, 이러한 느낌이 반드시 사람에게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세월의 덧없음과 소중함은 동전의 양면과 마찬가지이다. 타향의 쓸슬함은 고향의 포근함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몇 시간만 지나면 해가 바뀌는 제야(除夜)에 시간의 소중함과 고향의 포근한 정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면, 이는 분명히 인생의 활력소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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