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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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3.12.25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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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맛있다.’라고 써놓고 어떻게 읽어야 할까? ‘마싯다’가 옳을까, ‘마딧다’가 옳을까? 내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마딧다’였다. 시험문제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국립국어원에서 ‘마딧다’와 ‘마싯다’를 모두 인정했다. 그때까지 나는 사람들이 ‘마싯다’고 하면 ‘마딧다’로 고쳐주기도 했는데,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언어라는 것이 약속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지킨 약속과 남이 생각하는 약속이 달라져 버린 것이다. 문제는 국어 시간에 배운 것을 성실히 따르던 나만 이상해지고만 것이었다. 나만 바보가 된 느낌이 오랫동안 상처로 남았다. 국가기관의 유권해석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값어치’라고 쓰지만 ‘ㅅ’이 탈락하여 ‘가버치’로 읽는다. ‘흙’이라고 쓰는 것은 ‘우리는 흘게서 나와 흘그로 돌아간다’고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시 싸다’가 어느덧 ‘가비 싸다’로 읽힌다. 그러다보면 ‘값’이 언젠가는 ‘갑’으로 바꿔야할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의 발음습관을 보면 심각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영어덕분인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래 없이’의 ‘전래’를 ‘전내’ 또는 ‘전래’(쓴 그대로) 읽는다. 수업시간에 많은 학생들이 그런다. 특히 남학생들이 그런다. 우리 때는 이를 자음동화(子音同化: 자음이 같아지는 현상)라고 불렀는데 요즘도 그런 말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진리는 ‘질리’이지 ‘진니’가 아니다. 진리가 ‘질리’가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완전동화라고 부른다. 간단히 ‘ㄴ+ㄹ→ㄹ+ㄹ’로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자음동화다. 밥물이 ‘밤물’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젊은 학생들은 어느덧 그런 발음연습에서 멀어져 있다. 영어발음은 나 때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우리말 발음은 수준 이하다. 외국친구들은 배우기 때문에 억양은 이상할지는 몰라도 오히려 발음 그 자체는 정확히 쓰는 편이다. 그런데 우리의 발음이 엉망이다. 연락을 ‘열락’이라고 읽어야 하는데, ‘연낙’도 아닌 ‘연락’도 아닌 ‘연롹’과 비슷한 발음으로 읽는다. 영어식 ‘R’ 발음 또는 ‘L’ 발음의 공격 같기도 하다. ‘연낙’ 쪽으로 갈 때는 ‘R’로 가고, ‘열락’ 쪽으로 갈 때는 ‘L’로 가는 것 같다.

미국에서 ‘밀크’를 달라고 하면 못 알아들으니 ‘미역’을 달라고 하면 된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렇다. ‘L’ 발음의 어려움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R’을 ‘ㄹ’하면 못 알아들으니 차라리 ‘위’로 하라는 영어학원선생도 기억난다. 그러나 ‘위’도 아니다.

우리가 지키는 ‘두음법칙’을 북녘에서는 지키고 있지 않으니, 뭐가 옳은지 참 어렵다. ‘로동신문’이고 ‘라진선봉지구’다. 그러나 우리도 이제는 ‘나지오’라고 부르지 않고 ‘라디오’로, ‘노타리’가 아니라 ‘로타리’로 읽고 쓴다. 사랑은 ‘러브’이지 더 이상 ‘너브’가 아니다.

그러나 언어는 역사를 담는다. 그래서 우리는 ‘시읏’이 아니라 ‘시옷’이라고 쓴다. 최세진이 훈몽자회에서 ‘ㅅ’을 처음 이름붙일 때 ‘시의時衣’로 읽는다고 썼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때 ‘옷 의’ 자는 ‘의’로 읽는 것이 아니라 ‘옷’으로 읽는다. 마치 이두나 향찰과 같다. ‘기역’이 ‘기윽’이 아닌 것도 마찬가지로 ‘기역其役’으로 썼고, ‘디귿’이 ‘디읃’이 아닌 것도 마찬가지로 ‘디귿(지끝)池末’이기 때문이다. 원론으로 돌아가면, ‘기윽, 니은, 디읃, 리을, 시읏’이 옳지만, 그 속에 역사를 담기 위해서 ‘기역, 니은, 디귿, 리을, 시옷’이 된 것이다.

역사를 모르면 정의를 찾지 못한다. 정의를 모르면 역사를 만들지 못한다. 역사도 정의도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 개다. 나의 진리는 그대에게 아무리 질리더라도 ‘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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