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
세한도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12.23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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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추운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뒤에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

논어(論語)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말이다. 사시사철 상록(常綠)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송백(松柏)이지만, 다른 나무들도 함께 푸르른 봄 여름 가을은 그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다가, 다른 나무들이, 잎이 모두 떨어져 앙상한 모습을 보이는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푸르른 자태가 확연히 눈에 띈다는 것이다.

강건한 절개의 소유자는 평소에 잘 보이지 않다가, 역경과 고난의 때에 그 진가가 드러남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조선(朝鮮) 후기의 서화가(書形麻)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세한도(歲寒圖)라는 불세출의 명작을 세상에 내 놓았고, 이를 그의 제자 이상적(李尙迪)이 중국 연경(燕京)에 갔을 때, 그의 오랜 친구 오찬(吳贊)에게 보여 주며 제찬(題贊)을 청하자, 오찬(吳贊)이 이에 응해 시를 제(題)하였다.

◈ 제찬세한도(題贊歲寒圖)

林木似名節(임목사명절) : 숲의 나무들도 이름난 절개 있는 듯

松柏有本性(송백유본성) : 소나무와 측백나무에 타고난 천성 있다네

君子窮益堅(군자궁익견) : 군자는 궁할수록 더욱 견고해져

不容復何病(불용부하병) : 조정에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또 무엇을 걱정하리오?

榮枯亦偶然(영고역우연) : 꽃이 피고 시듦 또한 우연한 것이니

豈與凡奔競(기여범분경) : 어찌 다른 것들과 명리를 다투리오?

時遘霜雪嚴(시구상설엄) : 가끔씩 서리와 눈의 혹독함 만나

氣得天地正(기득천지정) : 기운에서 하늘의 바른 도리를 얻는다.

傳習後凋心(전습후조심) : 남보다 뒤에 시드는 마음을 배우고 익혀

希賢以希望(희현이희망) : 현명해지기를 바라고 또 우러러 보이기를 바란다.

 

※ 세상 나무들 중 절개로 이름 난 나무는 결코 흔한 게 아니다. 시인은 소나무와 측백나무의 타고난 천성(天性)에 절개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천성(天性)의 송백(松柏)은 사람으로 치면 군자(君子)에 해당한다. 형편이 곤궁하면 보통 사람들은 의지가 박약해지고, 비루해지기 쉽다. 그런데 군자는 거꾸로이다.

군자는 도리어 형편이 곤궁할수록 더욱 의지가 굳어진다. 그래서 설사 조정(朝廷)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괘념치 않는다. 마치 송백(松柏)이 추울수록 푸른 빛을 더욱 발하는 것처럼 말이다. 꽃이 피고 지고 하는 것은 사람의 의지가 아닌, 우연의 소산일 뿐이다. 그러니 영달(榮達)을 얻기 위해 남들과 억지로 다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송백(松柏)은 다른 초목들이 모두 기피하는 엄혹한 서리와 눈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기운에서 천지의 바른 도리를 얻는다. 시인은 다른 초목보다 늦게 시드는 송백(松柏)의 마음을 배우고 익혀서 현명해지고 추앙받는 인물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하는 것으로 시를 맺고 있다.

누구나 꽃을 좋아하고, 영달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시들고 춥고 곤궁한 것은 싫어한다. 그러나 인생은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기 마련이다. 한겨울의 추위를 피하기는커녕 더욱 반기는 송백(松柏)의 기개를 본받을 수 있다면, 고난과 역경이 도리어 반가울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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