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마루는 나이테가 없다
오래된 마루는 나이테가 없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3.12.18 2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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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차주일

딛는 순간 앙다문 울음소리 들린다

숨겨둔 현(絃)이라도 긁힌 양 온몸으로 파장 받아내며

최소 울음으로 최대 울음을 가두었다

증조모의 관을 떠멘 걸음 삭풍처럼 휘어 받고

네발 아기 걸음을 씨방처럼 터뜨렸다

발자국 없이도 걸어가는 시어미 심사가 붙은

종가의 대소사를 활대질로 다 받아주면서

얼마나 울어 지운 것인가

오래된 마루는 나이테가 없다

어머니는 아직도 마루에서 주무신다

봄볕은 모로 누운 어머니를 마루로 여기는 듯

축 늘어진 젖통을 눈여겨보지 못한다

걸레질로 지운 나이테가 파문처럼 옮겨 앉은 몸은

걸레를 쥐어짜듯 뒤틀려 있다

모로 뒤척이는 몸에서 훔친 자국 같은 그림자가 밴다

닦을수록 어두워지는

어두워질수록 빛나는 마루의 속을 이제야 알겠다

걸레의 잠이 끝나면 마루 또한 잠들 것이다

제 그림자 숨겨둔 현 지울 때까지 울어재낄 것이다

 

※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은 여전하지만, 세상은 자꾸만 토끼장처럼 촘촘한 아파트를 내밉니다. 닫고 닫고 닫아걸어도 불안한 시대처럼 찼ㆎ이 모이고 모여 불안을 버텨냅니다. 그러는 사이 익숙했던 기억도 점차 옅어져 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기억을 지워내는 나뭇결처럼 사람들의 기억도 오래된 것들로부터 멀어집니다. 기억을 지워내며 빛나는 마루처럼 진솔한 내 안의 울음으로 울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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