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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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3.12.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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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2013년의 마지막 카렌다를 건 지 며칠 지나지 않은 것 같은 데 세월은 어느 새 12 월의 중순을 넘어 종점을 향해 속력을 늦추지 않고 달리고 있다.

권세 있는 자도, 황금 덩어리를 한 짐 지고 있는 자도 시간을 멈출 수 없는 자연의 순리에 우리 인간은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하얀 백지에 한 해 동안 내가 한 일을 그리고자 하나 작년에도 그랬듯이 종이 한 구석에 손자 손녀를 돌보아준 것, 열심히 텔레비전을 본 것 이외에는 그릴 게 없어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언제부터인가 세월이 빨리 가는 게 아쉬워 금년 한 해는 무언가 좀 더 보람있게 살자던 연초의 계획은 또 허사가 되어 버렸다.

평범한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보통 사람들의 진리를 생각한다면 의식주(衣食住)에 크게 걱정 없었고 자신이나 가족이 별 탈 없이 무사히 한 해를 보낸 것이 행복이었음에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제 새해에는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을 위해 정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계획을 또 다시 세워본다.

연말이면 수북이 날아들던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이 사라진 지 오래되어 한 해 동안 안부 없이 지낸 그리운 이들이 어찌 사나 궁금하여 얼굴을 떠올린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을 당연하게 여기고, 바삐 산 탓에 그저 잘 지내거니 하다가 연말이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아마도 이제 나이 듦에 따른 허전함과 지난날의 짙은 향수 때문이리라.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는 가끔씩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안부를 확인하고 정을 나누었다.

편지란 좋은 소식만을 전하는 게 아니기에 내용에 따라 기쁠 수도, 슬플 수도 있겠지만 진심이 담긴 편지는 때로 힘든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도 한다.

오래 전에 나는 재소자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교회 잡지에 실린 내 글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분이 교회로 보내온 편지였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함께 출소하면 정직하게 살아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추운 겨울이어서 내복을 한 벌 사 보낸 후 연락이 끊어졌지만 몇 줄의 글이 그 분에게 위로를 주었다는 생각에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도 생겼다. 내게 가장 많은 편지를 받은 사람은 두 아들이다. 두 아들이 군대에 입대하여 자대 배치를 받기 전 훈련병이었을 때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편지를 보냈다. 훈련을 무사히 마친 두 아들은 내 편지가 힘든 훈련을 잘 견디는 데 힘이 되었고 동료들에게 부러움까지 샀다는 고마움을 전해주어 흐뭇하기도 했다.

여고 시절에 편지를 잘 쓰는 친한 친구가 있었다. 내가 힘들 때 쪽지 편지로 많은 위로를 주었던 다정한 친구가 50 초반의 나이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 편지는 끊어졌지만 가끔 힘들 땐 편지를 주고받던 그 친구가 더욱 그리워진다.

지금은 편지 대신에 휴대전화로 마음을 전하는 세상이니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도 최근에는 며느리들을 맞을 때 사돈 내외분들과 며느리들에게 자필로 장문(長文)의 편지를 쓴 이후로 기억이 없다.

편지 쓴 지가 오래여서 엄두가 나지 않겠지만 올 해가 다 가기 전에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보아야겠다.

한 해 동안 부지런하고 너그럽지 못했으며 다른 이를 위한 희생과 봉사의 삶에 부족했으니 깊이 반성하고 다음 해의 다짐을 약속하는 편지를 써 나 자신에게 보내야겠다.

또한 가족들에게도 예쁜 종이에 사랑과 진심이 담긴 짤막한 편지라도 써서 힘들게 일했던 한 해의 수고를 격려해주고, 밝고 희망찬 새해를 맞을 수 있는 힘을 보태주며, 소중하고 사랑스런 가족이 있기에 행복한 마음도 함께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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