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완전, 음악이다
바람이 완전, 음악이다
  • 정선옥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3.12.12 2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정선옥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얼마 전 TV에서 본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 중 정준하와 김C가 부른 ‘사라지는 것들’에 시선이 머문다.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로 중독성이 있다. 밤이 일찍 찾아오는 늦은 저녁에 아이와 책을 읽다가 눈을 감고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음미한다. 요즘 노래 가사가 유난히 귀에 들어온다.

‘모든 게 노래’(김중혁 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네개의 챕터로 나뉜 노래에 대해 쓴 글 모음이다. 계절에 어울리는, 특정 계절에 들었던 음악과 일상을 소개한다. 어느 날 그가 뮤지션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LP 판부터 삼성 마이마이, 더블 데커, 아이리버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대학 때 학교 근처 다방에서 DJ에게 음악을 신청하고 노래가 나오면 기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저자가 라디오 방송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해 추천한 다섯 곡은 ‘Sunny Afternoon(The Kinks), 바람의 왈츠(이아립), Sour Times(Portishead), Wind Blows(오지은), The Dreaming Moon(The Magnetic Fields)’ 이다. 이 중에서 이아립의 바람의 왈츠를 들었는데 수줍은 소녀 같은 음색과 가사가 예쁘다. 책을 읽다가 스마트폰으로 듣고 싶은 음악을 검색하면 즉시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으니 참 편한 세상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닌 음악의 계절이라는 그의 말에 반기를 들기보다는 왠지 인정하고 싶다. ‘자연의 모든 색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밤이 오기 전의 노을처럼 곧 겨울이 되어 색을 잃어버릴 많은 것이 얼마나 처절하게 자기 빛을 발하고 있는데. 하늘은 얼마나 파랗고 나무들은 얼마나 선명한데. 책 같은 거 보지 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이 가을을 보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왜 이리도 가슴을 울리는지.

‘음악은 귓속으로 들어와 모든 빛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음악을 들으며 풍경을 바라보면 빨래 세제 광고처럼 흰색은 더욱 희게. 색깔은 선명하게 보인다. 보내도 가지 않던 여름이 가고, 보내고 싶지 않은 가을이 왔다. 바람이 완전, 음악이다.’ 책 속의 글은 각각 한편의 아름다운 시가 된다.

요즘 이 책 덕분에 딸아이가 즐겨 듣는 루시드 폴의 노래도 감상하고, 오늘은 온종일 영화 레옹의 OST이기도 한 스팅의 ‘Shape of My Heart’를 들었다. 가을과 겨울에 어울릴만한 노래 중 하나로 이 곡을 추천했다. 스팅의 애잔한 목소리는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다.

음악을 사랑한 소설가 김중혁은 삶이 풍요로워 보인다. 그의 삶에는 음악이 늘 함께 한다. 오래전부터 정형돈의 팬이라는 그의 소탈한 취향도 왠지 정감 있다. 대부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클래식을 앞세우는데 주로 팝송이나 인디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일상과 음악이 어우러진 편안한 에세이지만 글이 보석처럼 빛난다. 안개가 자욱했던 겨울의 한가운데인 지난 일요일,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는 움츠린 딸아이의 뒷모습과 금요일이나 되어야 볼 수 있다는 허전함에 가슴 한 켠이 먹먹해 온다. 아이를 보내고 운동장 한가운데서 다시 스팅의 ‘Shape of my Heart’를 들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