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 주철희 <청주 제자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3.12.11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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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주철희 <청주 제자교회 담임목사>

유명 방송사의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외국 특파원으로, 간판 보도프로그램의 앵커로 한창 유명세를 얻다가 아내의 신앙에 감화되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세상의 명예와 부귀와 권세까지 다 버리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분이 있습니다. 조정민 목사님입니다. 이분이 트위터에 남긴 글을 모아 ‘사람이 선물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글귀 가운데 마음을 깊이 찌르며 가슴에 와 닿는 말이 있었습니다.

“스물에서는 세상을 바꾸겠다며 돌을 들었고, 서른에는 아내 바꾸어 놓겠다며 눈초리를 들었고, 마흔에는 아이들 바꾸고 말겠다며 매를 들었고…쉰에야 바뀌어야 할 사람이 바로 나임을 깨닫고 들었던 것 다 내려놓았습니다.”

청년 시절에는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나 되는 것처럼, 그리고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만만했습니다. 세상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고 목소리를 높이며 잘못된 것 못마땅한 점들을 쏟아내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것, 옳지 않은 것,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 부족하거나 조금 모자라는 것조차도 가차없이 비판하고 비난하였습니다.

원칙을 고수하고 엄격하고 조금의 타협도 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요 바른 것이요 그것이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목사님이 붙여주신 별명도 면도날이었습니다.

점차 나이가 들어 오십 중반 고개를 들어서면서 그런 모습이 하나 둘 사라지고 점점 두루뭉술해지는 자신을 봅니다.

전에는 꽤 까다롭고 원칙을 고수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하고자 하는 용기도 의지도 점점 사라져 갑니다. 이것이 나이 들어가면서 현실에 타협하고 순응해 가는 것인지 아니면 철들어 가는 것인지 때로는 헷갈리기까지 합니다.

선과 악에 대한 원칙과 소신은 흔들려서는 안 되겠지만 사람을 대하는 자세는 너그러워지고 덮어주고 품어주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 K.Barth)도 생각의 전환을 경험합니다. 젊은 시절 신학자들 밑에서 이론적으로 신학을 공부할 때와 신학수업을 마치고 광산촌의 어려운 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목회 경험과 1~2차 세계 대전을 경험하면서 그의 신학은 180도 전환됩니다.

전에는 인간에 대한 낙관론과 희망으로 가득했다가 현실 속에서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 죄와 부패성을 절감하면서 그는 인간과 절대자 하나님과의 엄청난 간극을 발견하고 신의 은총 외에는 인간에겐 구원의 여망이 없음을 역설하게 됩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더해가고 세월의 더께가 더해가면서 저 유명한 사도 바울의 고백이 마음을 울립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하여 내랴”

삶의 연륜이 조금씩 더해 갈수록, 세상을 알고 경험할수록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부족하고 죄 많은 사람들이요, 인간 스스로에게는 구원할 능력이 없는 것을 발견하면서 조금씩 철들어 가며 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이 떠지나 봅니다.

그래서 이제 이런 기도가 나오나 봅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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