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냐?
밥 먹었냐?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3.12.1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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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한 이틀 눈발이 날리고는 바짝 추워졌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 생각이 간절해질 때다. 이 추위에 아들을 군에 보내고 노심초사하며 소식을 기다리는 지인이 한분 계시다.

며칠 전 전화가 왔는데 첫 마디가 내가 왜 그랬을까? 였다. 무슨 말이냐고 연유를 물었더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 전화를 했는데 첫마디가 “밥 먹었냐?” 였다는 것이다. 아들에게서 걸려올 전화를 기다리면서 어떤 말을 해 줄까 생각도 많이 하고 아들 가슴에 남을만한 말로 격려해 주고자 준비도 했는데 겨우 그 말 밖에 못했다며 자책을 했다.

나도 생각해 보니 집 떠나 있는 아이에게 늘 하는 얘기가 “밥 먹었냐”이다. 그리고 먹었다고 하면 안심이 되는데 못 먹었다 하면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다. 엄마의 마음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아이들 역시 고등학교 때부터 나가 살다 보니 가장 생각나는 것이 “집밥”이라고 한다. 그래서 집에 오면 외식보다는 내가 손수 차려 주는 밥을 좋아한다. 내 음식 솜씨는 별로이고 절반은 인스턴트로 채워지는데도 집에서 먹는 밥을 찾는 것을 보면 구태여 맛이 아니라 마주 앉아 먹는 애틋한 장면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본다.

반찬이 많고 적고를 떠나 게다가 맛이 있든 없든 엄마가 해 주는 밥은 그래서 사랑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나 또한 나이가 들어도 아직 엄마가 해 주셨던 음식 맛이 생생하고 늘 그리워지곤 했으니 이보다 더 한 향수병이 또 있을까. 이 세상 자식을 맛나게 먹이기 위해 온갖 정성을 들이는 어머니 음식보다 맛난 것은 또 없을 테니 말이다.

천명관의 소설「고령화가족」에 보면 아버지가 다른 자녀들이 각자의 삶에서 실패한 뒤 낡고 비좁은 엄마 집으로 모여든다. 소위 나이 값도 못하는 두 아들과 그보다 못하다면 서러울 딸과 그리고 말썽장이 손녀까지 희망이라곤 없는 막강 집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늘 밥상을 차려 함께 먹도록 하지만 그들은 밥상 앞에서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등 온갖 작태를 연출한다. 그래도 엄마는 늘 밥상을 차리고 그들과 함께 밥을 먹는 걸 일과로 여겼다.

결국에는 엄마가 차려 주었던 밥의 힘이었는지 나중에는 가족들 간의 불화가 해소되고 크고 작은 실마리가 풀리는 이야기다. 거기서 엄마의 밥은 그들의 힘이었고 사랑이었다는 흔하디 흔한 표현을 해도 어색하지 않은 건 누구나 수긍하는 일이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인사가 “식사 하셨어요?” “밥 먹었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마운 사람에게나, 미안한 일을 했을 때, 반가운 사람을 우연히 만났을 때도 “언제 밥 한번 먹자”고 말을 건넨다. 그건 꼭 밥을 먹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너와 정겨운 이야기를 나눌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화평할 和 자에도 벼‘화’에 입‘구’자로 되어 있으니 밥이야 말로 평화의 상징이지 싶다.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에 불현듯 마음이 울적해진다. 문득 한해를 돌아보니 올해 유난히 밥 한번 먹자고 청할 사람이 많은 듯하다. 말뿐이 아닌 따뜻한 밥상을 마주한 채 적조했던 마음을 풀고 싶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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