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친구
술과 친구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12.0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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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진부한 질문이지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돈 많고, 지위가 높고, 교양 있고, 호화롭고 이렇게 사는 것을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돈과 명예에 집착하지 말고 삶 자체를 즐겨야 한다고 아무리 가르쳐도 사람들은 웬만해선 이를 수긍하지 않으려 한다. 그만큼 세속적인 욕망의 굴레는 벗어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굴레를 벗어나 유유자적한 삶을 살다 간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다. 당(唐)의 시인 고적(高適)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친구를 칭송했다.

◈ 취한 뒤 장욱에게(醉後贈張九旭)

世上謾相識(세상만상식) : 세상 사람들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가 넘쳐 나지만

此翁殊不然(차옹수불연) : 이 노인만은 유달라 그렇지가 않도다

興來書自聖(흥래서자성) : 흥에 겨워 글씨 쓰면 그 글씨 명필이요

醉後語尤顚(취후어우전) : 취하면 말이 더욱 기발해지네

白髮老閑事(백발노한사) : 백발이 되도록 언제나 세상일에 무심하였고

靑雲在目前(청운재목전) : 푸른 구름은 눈앞에 있네

床頭一壺酒(상두일호주) : 침상 머리에 한 병의 술

能更幾回眼(능경기회안) : 다시 몇 번의 눈길을 바꿀 수 있을까?



※ 무슨 연유에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시인은 술을 마시고 취하였다. 도도하게 취하고 나자, 한 친구가 문득 떠올랐다. 장욱(張旭)이라고 불리는 그 친구는 여느 세상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풍모를 지니고 있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과의 폭 넓은 교우 관계를 원하지만, 이 친구만큼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사람 사귀기를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외로운 것도 아니다. 감흥이 일어나면 글씨를 쓰곤 하는데, 그 솜씨가 최고의 경지이다.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는데, 글씨에 있어서는 저절로 성인(聖人)의 반열에 들었다. 술을 마셔 취하고 나면, 그 말이 평소보다도 더욱 기발해진다.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글씨를 쓰고, 술이 취한 뒤에는 거침없는 기구(奇句)를 쏟아내는 이 친구에게 관직은 관심 밖이다. 백발노인이 되도록 벼슬살이를 한 적이 없고, 늘 자연 속에서 은일(隱逸)의 삶을 살았다. 은자(隱者)의 삶은 단출하였다. 소박한 침상 모퉁이에는 술 한 병이 놓여있었다. 시인의 친구는 술을 보고 가만히 놔두고만 있을 위인이 아니었다. 한두번 눈길이야 피할 수 있겠지만, 몇 번을 더 그것을 피할 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머지않아 그 술은 마셔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보통은 여러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생존해 나간다. 그러나 이러한 삶들을 싫어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깊은 산 속에 혼자 은거하는 은자(隱者)가 그런 사람들이다. 이러한 은자(隱者)들은 혼자 있다 해서 외롭거나 슬프지 않다. 도리어 한가롭고 자유로운 삶을 즐긴다. 한 차원 높은 경지의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세속의 굴레에 매여, 진정한 자유의 매력을 아예 인식하지도 못하는 삶은 참으로 딱하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自尊感)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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