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
  •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 승인 2013.12.05 1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이헌경 <음성대소초 사서교사>

“아들, 사람들이 왜 여행을 하는지 알 것 같아. 예상치 못한 절경들과 생각지도 못한 경험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니까.”

도서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태원준 글·사진/북로그컴퍼니)는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가 미친척 300일간 세계를 누빈 여행기다. 이들은 여행의 마지막 도시가 되어버린 런던에서 여행의 의미를 발견했다. 봐도 이름을 모르는 것들과 내가 죽기 전에 드디어 이걸 보는구나 싶은 것들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물론 남들이 모를, 숨은 보석을 찾아냈을 때의 쾌감도 대단하다. 하지만 저곳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하며 평생 꿈꾸던 곳에 발을 들여놓는 건 상상 이상의 쾌감을 안겨준다. 환갑을 맞이한 엄마에게 아들은 그 쾌감을 아낌없이 안겨드렸다.

“내가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었던 이유. 거창할 필요가 있나? 그저 엄마가 노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좀 더 정중히 표현하자면 엄마가 아무런 걱정 없이 어린아이처럼 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도도히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우아한 여행이 아니라 젊은이들도 힘들다하는 배낭여행을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닌 장장 10개월을 겁도 없이 떠난 아들의 마음은 이렇게 작은 소망에서 시작되었다. 어쩌면 겁 없이 떠난 여행이었기에 덤벼오는 세상을 즐겁게 누빌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여행 속에는 두 사람을 버티게 해 준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정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자연과 문화가 선사하는 경이로움이 있었다.

엄마와 아들의 배낭여행이라는 조합도 멋진 키워드가 되었지만 이 여행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준 것은 ‘카우치서핑’이었다. 여행하고자 하는 곳의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무료숙박 및 가이드까지 받을 수 있는 여행자들을 위한 비영리 커뮤니티인 카우치서핑. 그 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민간 외교관을 자처한 현지인의 도움으로 얻게 되는 추억과 경험은 상상 그 이상의 감동일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생기는 불협화음을 슬기롭게 잘 풀어나간 모자의 노력과 배려도 돋보였지만 장기간의 배낭여행이 주는 육체적 피로를 도움과 사랑이라는 단어로 달래주었던 각 국의 호스트들. 그들과의 만남이 모자에게는 여행이었고, 길을 떠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세계 각 국의 호스트들이 두 사람에게 보여준 사랑이 나에게도 느껴져 읽는 내내 나도 후에 카우치서핑의 호스트가 되어볼까 생각했다. 내가 떠나지 못한다면 떠나온 사람들의 방문을 환영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역시 여행이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러려면 우리 전통 음식을 배우고 전통 문화와 역사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해 둬야겠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내 두 발로 직접 다녀봐야겠다.

내년이면 환갑을 맞이하는 나의 엄마. 해외여행이라고는 몇년 전 부부동반 모임에서 중국을 다녀오신 것이 전부다. 거기다 중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멀미로 심하게 고생하고는 다시는 비행기 안 탄다며 선포 아닌 불편함을 토로하신 엄마.

딸의 마음은 아들처럼 나 역시 일단 가고 봅시다지만 전화 속 너머 목소리는 늘 바빠서 외손주 보러 갈 시간도 없다고 하신다. 농번기인 겨울이라지만 계절이 바뀌는 동안 미뤄둔 집안일에 날 추운 것도 잊고 계신 것 같다. 하지만 내년에는 나도 엄마 손 잡고 길을 나서봐야겠다. 그 전에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다정하게 누워 내가 만난 모자의 도전과 흥미진진한 여행 이야기를 들려드려야겠다. 혹시 알까? 이야기에 용기를 얻어 엄마도 발바닥이 간질간질, 마음이 꿈틀꿈틀 하실지 모르니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