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내린 겨울 저녁
첫눈 내린 겨울 저녁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12.0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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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늦가을과 초겨울을 결정적으로 가르는 것은 아마도 눈일 것이다. 아침 들판 초목마다 하얗게 내려앉은 서리를 보았을 때만해도, 사람들은 아직 겨울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러다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간밤에 내린 눈이 소복히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면 비로소 겨울이 왔음을 인정하고 만다. 사람들이 눈이 와야 겨울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지각이 이성보다는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눈이 오는 겨울이 오면, 사실상 한해는 마감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무렵에 사람들이 지나온 한해를 돌아보며 상념(想念)에 잠기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 또한 겨울 저녁 눈 오는 모습을 보며 상념(想念)에 잠기었다.



◈ 겨울 저녁 눈을 보며 호거사의 집을 생각하다(冬晩對雪憶胡居士家)

寒更傳曉箭(한경전효전) : 겨울 한밤 북소리 새벽을 알리고

淸鏡覽衰顔(청경람쇠안) : 맑은 거울에 초췌한 얼굴 보인다.

隔牖風驚竹(격유풍경죽) : 창 밖에는 바람 불어 대나무 놀라고

開門雪滿山(개문설만산) : 문을 여니 눈이 산에 가득하구나.

灑空深巷靜(쇄공심항정) : 눈발 공중에 날리니 깊은 골목 조용하고

積素廣庭閒(적소광정한) : 쌓인 흰 눈에 넓은 뜰이 한가하다.

借問袁安舍(차문원안사) : 묻노니, 한나라 선비 원안의 집안에

翛然尙閉關(소연상폐관) : 태연자약하게 아직도 문 닫고 있을까

 

※ 겨울은 유난히 밤이 길다. 오후 일곱 시에서 아홉 시까지인 초경(初更)만 해도 저녁이라기 보다 차라리 한밤중이다. 그래서 시인은 초경(初更)을 알리는 북소리에서 마치 새벽을 알리는 물시계의 바늘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낀다. 새벽이 왔다고 여긴 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득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았다. 마침 그 거울은 맑게 닦여져 있었는데, 그 안에 노쇠한 얼굴이 어른거렸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시인 자신이었다.

새벽 같은 겨울 초저녁, 문득 늙음을 자각한 시인은 겉으로는 담담하다. 그러나 속으로는 착잡한 생각이 들었던지, 아예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바깥이 소란한데, 바람에 놀란 대나무가 놀라서 내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밖이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한 시인은 방문을 열어 본다. 열자마자 놀랄만한 광경이 눈에 확 들어왔다. 어느 사이인지도 모르게, 산에 가득 눈에 내렸던 것이다. 시인은 참지 못하고 문 밖으로 나선다. 하늘에선 눈이 뿌려지고 있었고, 마을은 깊은 골목까지도 고요하기만 하다. 하얗게 눈 쌓인, 넓은 마당은 한가하기 그지없다.

시인은 문득 멀리 사는 친구를 떠올린다.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였던 원안(袁安)이 낙양(洛陽)에 기거할 당시, 그 일대에 대설(大雪)이 내려 사람들이 먹을 게 없자, 모두 피난길에 나섰는데, 혼자서 집안에 누워 꼼짝 않고 태연하게 누워 있었던 것처럼, 시인의 친구인 호거사(胡居士)도 이 큰 눈에도 꿈쩍하지 않은 채, 태연작약하게 그의 집에서 유유자적하리라는 것이다.

겨울 초저녁 갑작스런 눈을 맞은 풍광을 담담하게 풀어가는 시인의 솜씨가 탁월하다.

갑자기 내린 큰 눈에 사람들은 겨울이 왔음을 실감한다. 눈이 만든 황홀한 경관에 감탄하기도 하고, 한적함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도 하고, 갑지기 멀리 있는 친구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겨울의 첫 눈은 힘겨운 겨울을 이겨나가게 해주는 활력소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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