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폭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3.11.2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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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윤제림

싸락눈으로 속삭여봐야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진눈깨비로 질척여봐야 고샅길도 못 막으니까
저렇게 주먹을 부르쥐고 온몸을 떨며 오는 거다.
국밥에 덤벼봐야 표도 안 나니까
하우스를 덮고, 양조장 트럭을 덮는 거다.
낯모르는 얼굴이나 간지럽혀봐야 대꾸도 없으니까
저렇게 머리채를 흔들며 집집을 때리는 거다.
점, 점…… 으론 어림도 없으니까 삽시에, 일순에!
떼로 몰려와 그리운 이름 소리쳐 부르는 거다.
어른 아이 모다 눈길에 굴리고 자빠뜨리며
그리운 이의 발목을 잡는 거다.
전화를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철길을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다른 세상으론,
비행기 한 대 못 뜨게 하는 거다.

 

※ 11월의 폭설. 겨울이 채 오기도 전에 폭설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솜뭉치 풀풀 나리는 눈의 모습에 이상기후도 잊습니다. 나무마다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쓰고 있어도 하나 춥지 않습니다. 붉은 단풍나무는 11월의 크리스마스로 변신해 환상적인 모습을 선사합니다. 거북이 걸음이어도 좋습니다. 삶에 쉼표를 전해주는 11월의 폭설은 즐거운 테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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