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서판(身言書判)과 통섭(統攝)형 인재
신언서판(身言書判)과 통섭(統攝)형 인재
  • 강상무 <청주외국어고등학교 교장>
  • 승인 2013.11.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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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강상무 <청주외국어고등학교 교장>

첨단기술 문명이 제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이 배제된 채 운용될 수 있는 첨단기기는 없다. 슈퍼컴퓨터나 로봇에 의해 조정, 관리되는 시스템도 결국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프로세스의 일부분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취업시즌을 맞아 각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모양이다.

옛 당나라 태종이 유능한 인재를 등용키 위해 과거제도를 실시하였는데 급제 기준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신언서판을 두루 갖춰야만 유능한 인재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신(身)은 사람의 풍채와 용모를 뜻하는 말이다. 건강한 신체와 단정하고 바른 몸가짐을 지녀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밝고 긍정적인 표정, 부드럽되 자신감에 찬 행동거지 등은 오늘날 면접시험에서도 중요시 여겨지는 요소다. 언(言)은 사람의 언변을 이르는 것으로 조리 있고 분명한 자기 의사 표현력을 말한다. 박학다식한 사람일지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중언부언하게 되면 상대방과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보는 눈은 비슷했던 것 같다. 서(書)는 글씨(필적)를 가리키는 말로 예로부터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주는 것이라 하여 매우 중요시하였다. 지식과 지혜 수준을 가늠하는 것으로 문(文)이라고도 하였다. 오늘날 의미로 재해석해 보면 다양한 학문적 지식과 정보를 습득한 교양 있는 지식인상을 요구했다고 볼 수 있겠다. 판(判)은 판단력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용모가 뛰어나고 언변이나 글씨에 능하다 해도 사물과 현상의 이치를 깨닫는 능력이 부족하면 훌륭한 인재라 할 수 없다. 경중완급, 전후좌우를 잘 살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결론 내리는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은 복잡다기한 오늘날에도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이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상도 변화한다. 최근 들어 ‘통섭(統攝)형 인재’에 대한 관심이 높다. 통섭의 사전적 낱말 뜻은 ‘전체를 도맡아 다스림’이다. 여러가지 다양한 요소를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융합해 보다 좋은 결과를 도출한다는 정도의 해석이 가능하다. 특정분야 지식을 가진 전문가(Specialist)를 넘어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두루 갖춘 통섭형 인재(Generalist)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통섭형 인재는 단순히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지식을 지닌 팔방미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분야에 전문적 지식을 지니면서 동시에 타 분야에도 소양이 깊어 새로운 관점에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상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 S전자는 인문학 전공자를 엔지니어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진행중이고 세계 유수의 인터넷 기업 구글은 신입사원 대다수를 인문학 전공자로 선발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통섭형 인재에 대한 기업들의 높아진 관심이다.

어떤 학자는 역사 속의 인물 중에서 대표적인 통섭형 인재로 수백권의 저술로 다방면에 걸쳐 업적을 남긴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과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 미술가이자 과학자·기술자·사상가로 조각·건축·토목·수학·과학·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 재능을 보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꼽기도 한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자신의 스승인 하버드대학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concilience(통섭)’을 번역해 한국 사회에 ‘통섭’이라는 화두를 던진 학자다. 최교수는 ‘인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학문에 일정수준 이상의 소양을 겸비하고 있어 통찰력과 종합적 사고력,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가 통섭형 인재’라고 설명한다.

경계를 허물고 넘어서야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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