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여행을 권함
그림여행을 권함
  •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 승인 2013.11.2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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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충북중앙도서관 사서>

누구에게나 로망이 있다.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해변도로를 달리는 로망, 읽을 책 잔뜩 쌓아놓고 방을 뒹굴거리는 로망, 배낭 하나 짊어지고 훌훌 털어버리며 불현듯 여행을 떠나고 싶은 로망. 이 세상을 사는 다양한 사람의 수만큼 로망도 다양하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다. 무심히 그냥 끼적이는 척하지만 그럴듯하게 잘 그리는 그런 사람이 되고픈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하얀 백색 도화지가 주는 공포는 여전히 강렬해서, 무엇인가를 그리고자 하면 심호흡이라도 길게 해야 한다.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가 있다. 주로 스카프를 디자인하는 그 친구의 취미는 여행이다. 본업이 디자인이다 보니 그 친구의 가방에는 작은 스케치북과 색연필이 항상 함께한다. 그리고 여행을 취미로 둔 그녀는 회사를 두달씩 쉬면서 훌쩍 떠나곤 한다. 어느 날 보면 엽서가 온다. 스케치북을 찢어서 슥슥 그림을 그린 후 한두 줄로 끼적여 보낸 엽서로 내 맘을 흔들어 놓는다. 그녀의 그런 여행법이 샘이 나서 혹은 부러워서 나의 로망이 생겼나 보다. 이런 나의 로망에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 넣어 준 것이 바로 도서 ‘그림 여행을 권함(김한민 저, 민음사)’이다. 흰 도화지에 표현한 그 무엇에 대하여 잘하고 못함을 판단하지 말고, 그냥 표현하면 그뿐이며, 사진과는 다른 메시지를 전해준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집트 여행을 떠나는 어머니에게 그림여행을 권하며 스케치북과 몇 자루의 색연필을 챙겨 드렸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학교 수업 이외에 미술을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숙제처럼 해온 그녀의 그림 속에는 수줍은 듯한 그녀의 여행에 대한 기억과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 같은 독자에게 용기를 주려는 듯 저자는 어머니 이야기와 어머니 그림을 책의 서두에서 펼쳐놓았다. 물론 책을 뒤로 넘길수록 저자의 그림 솜씨는 매우 뛰어나다. 여행지에서의 소소한 이야기와 어우러진 그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고, 캐릭터가 숨을 쉬는 듯하다. 나는 그림이 나누는 이야기를 숨죽여 듣기도 하고, 여행을 꿈꾸기도 한다. 나는 다르게 그림 여행을 그려주겠다고 호기도 부려본다.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과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은 그 감성이 다르다. 사진을 보면서 추억하는 것은 마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실제로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그린 그림을 가지고 여행을 추억하는 것은 그 여행지에 느꼈던 그 감성과 느낌을 고스란히 재생하는 것 같다. 이처럼 그림이라는 매체는 참 아날로그 하다. 지나간 것은 내 기억에 의존하여 그리기 때문에 미화되기 싶지만, 내 감성을 담아내기는 충만하다. 글로써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한 줄의 선과 하나의 색으로 여행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미지든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단 몇 초 만에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너무 빠르고 즉답적인 세상인지라 아날로그적 감성에 더 끌리기도 한다. 3D보다는 2D에서 주는 그런 여백이 그립다. 저자는 그래서 그림에 대한 예찬론을 펼치는 것이 아닐까? 연필을 들고 종이에 무엇이라도 그려보자. 단순히 동그라미여도 좋다. 이것이 커피잔이 될 수도, 웃는 내 얼굴이 될 수도 있다. 그 속에는 분명히 우리의 이야기가 녹아 있을 것이다. 저자가 권하는 그림 여행은 이렇게 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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