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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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9.1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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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용정에 숨은 민족혼을 찾아

엄 갑 도 < 전 충청북도 교육청 중앙도서관장>

일제의 통치 밑에서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독립운동을 활발히 펼쳤던 곳으로 유명한 용정을 찾아보기로 했다. 용정은 연길에서 30여분 거리에 있었다. 한국인들에게는 가곡 '선구자' 때문에 일송정, 해란강, 용두레, 용문교, 비암산 등이 널리 알려져 있고, 또 '서시'로 유명한 윤동주 시인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내를 가로질러 나오자 그 유명한 해란강이 나타났다. 강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선구자 가사에서 '천년 두고 흐른다'라고 했듯이 예나 이제나 변함없이 강물은 흐르고 있겠지만, 내가 생각한 푸르고 깊은 강은 아니었다. 강가에 말달리던 선구자의 모습 또한 볼 수 없으니, 세월의 변화를 어찌할 수 없음이 아니겠는가.

용문교를 지나 비암산 일송정을 찾았다. 본래의 일송정은 오랜 풍상에 시달려 모질게 자란 소나무의 잎이 정자처럼 그늘을 만들어 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독립운동을 하던 선열들이 이 일송정 아래에서 만나 독립의지를 불태우곤 했다고 한다. 이를 미워한 일제가 소나무에 구멍을 뚫고 후추가루를 넣어 고사시켰다고 한다. 지금의 소나무는 그 후 옮겨 심어놓은 소나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 팔각정정자는 지난 1980년대 후반 중국정부 당국에서 이곳에 '일송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건립하여 이를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또 일송정 주변에는 큰돌에 '선구자'노래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이는 1996년 경남 거제시가 항일독립유적지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1993년에 중국 용정시가 비석의 선구자 비문을 삭제해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두고 국내에서는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사 왜곡을 시도중인 중국이 우리 민족의 정기까지 말살하고 있다는 주장과 선구자의 작곡가인 조두남의 친일적 행각과 '님과 함께'(박태준 곡)라는 노래 표절시비가 있어, 역사의 진실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되어 삭제하고 교체된 것이다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었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대성중학교(현재는 용문중학교라 함)를 찾았다. 낡은 2층 구관이 민족교육을 실시한 민족주의 학교였던 대성중학교라 한다. 그 건물 앞쪽에 유명한 윤동주 시인의 '서시' 시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시비 앞에 서서, 민족혼을 불태우기 위해 젊음을 바친 윤동주 시인의 명복을 빌었다. 윤동주 시인은 이곳에서도 민족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구관 2층으로 올라가니, 교실을 역사자료관으로 개조해 놓고 있었다.

개교이래 학교의 발전사, 용정에서 벌어졌던 항일운동사와 본교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동주 시인을 기리기 위한 유적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었다. 특기할만한 것은 지금도 설립 이념을 살려 조선족 학생만을 입학시키고 민족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시내를 벗어나 연길로 돌아오는 길 양편으로 시원한 벌판이 우리를 반겼다. 넓은 벌판에는 옥수수가 푸른 물결을 이루고, 가끔씩 우리의 선조들이 일구어 놓은 볏논에는 벼가 한창 자라고 있는 것이 눈에 띄어 반가웠다. 저 넓은 벌판에 그 옛날 우리의 선조인 고구려인들이 호령하던 늠름한 기상이 어른거리고, 가까이는 조국독립을 위해 말달리던 선구자들의 모습이 어른거림은 나만의 환각일까. 지금은 남의 나라가 되어, 그 속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후손들의 모습을 보고 돌아오는 발길이 가볍지만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부디 곳곳에서 숨쉬고 있는 우리의 민족혼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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